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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들

    손정민이 그린 여성들은 그림 바깥에 선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초연히 본다. 그 앞에서 우리는 조금 어색해진다. 왜 손정민의 인물화가 보는 이를 어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서는 미술사 내 여성 재현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손정민, The woman wearing double pearl earrings, 72.7x60.6cm, Oil on canvas, 2022ⓒprint bakery


    손정민이 그린 여성들은 그림 바깥에 선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초연히 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조금 어색해집니다. 왜 손정민의 인물화가 보는 이를 어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서는 미술사 내 여성 재현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좌) Edouard Manet, Olympia, 1863 © Musée d’Orsay (우) Barbara Kruger, Untitled (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 1981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의 저자 존 버거는 전통적 회화에서 남성은 보는 주체, 여성은 보이는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미술사적으로 여성은 계속해서 대상화된 것입니다. 그러니 1865년 마네의 ‘올랭피아’가 나왔을 때 논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다. 그림에서 ‘올랭피아’로 추측되는 여성이 그리스 신화의 이상적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관람자를 당당한 시선으로 직시합니다. 이렇게 마네는 전통적인 여성 누드 스타일을 거부하고 여성을 향한 관념적 묘사를 탈피하며 전통적 시선의 역전을 시도했습니다.

    시선 문제를 다룬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은 바바라 크루거의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입니다. 작품 안에는 여성 조각상 옆모습이 보입니다. 그 위에 텍스트가 한 글자씩 세로로 올려져 있습니다. “you”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 크루거는 ‘you’와 ‘me’로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의 자리를 명확히 인식시키면서 남성의 응시 대상이 되는 여성 이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손정민, Brown haired woman, 53x45.5cm, Oil on canvas, 2022 ⓒprint bakery


    손정민이 그린 여성들 또한 이전에 대상화되던 여성과는 다릅니다. 담담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자신이 그려지고,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손정민 회화 속 인물들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은 남성 주체적 관찰 대상이 아닙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그려진 개인입니다.



    (좌) 손정민, pink lips woman, 29.7x21cm, Oil on canvas, 2022 (우) 손정민, The woman with green eyes, 29.7x21cm, Oil on canvas, 2022 ⓒprint bakery


    두 번째 이유는 인물들이 어떠한 정보값 없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보기 위해서는 정보가 없어야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머리에 있을 때는 그 이야기가 제시한 틀 안에서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무런 정보도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평범한 고찰 방식을 단념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본질을 발견합니다.

    손정민은 모든 인물의 표정을 무표정으로 닮아 보이도록 하거나, 이름과 출처를 숨기며 모델에 대한 정보를 떼어냅니다. 다만 인물 위에 아주 얇고 투명한 회화의 겹을 얹습니다. 손정민 인물화가 인물 각자의 아우라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인물의 어떠한 것도 뒤틀지 않는 대신 그림으로 인물을 얇게 감싸서 그를 훤히 비추어 보여줍니다. 정보 없이 제시되는 인물이 우리 눈앞에 놓였을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봅니다.



    (좌) 손정민, The woman in deep green, 30x40cm, Oil on canvas, 2022 (우) 손정민, The woman with green eyes, 29.7x21cm, Oil on canvas, 2022 ⓒprint bakery


    대상을 틀림없이 화면 안에 가져오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재현하면 할수록 내가 보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모든 걸 가져올 수 없어도 가져오는 것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재현하는 사람들의 숙제이고 최선이 아닐까요. 대상화를 벗어난 여자들, 얇고 투명한 회화의 이불을 덮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인물들은 손정민의 회화 안에서 무한히 해석될 자유를 얻습니다. 관객 또한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상상 이전에 보이는 본질적인 모습에 침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손정민 인물화의 어색함이고 특별함입니다.



    손정민 작업실 전경 ⓒprint bakery


    작가와의 짧은 대화

    전혜림(이하 전): 전시 홍보를 준비하면서 작가님의 인물화를 한 번에 모아서 보게 되었을 때, 강렬함을 느꼈어요. 작품들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더 깊은 층위의 이론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시선’과 ‘여성’ 그리고 ‘본질’과 ‘아우라’. 이것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한 글을 써보았는데 어떠셨어요?

    손정민(이하 손): 스스로 작품을 보면서 깨달았던 것들이 글 속에도 묻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특히 제가 여행을 가서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전시를 봤을 때가 생각나더라고요. 그의 사진이 제 그림과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었죠. 그의 사진 속 인물 또한 직업을 제목으로 해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인물들은 다 정면을 보고 있고요. 사진 속 얼굴들이 진솔하고 연약해 보였어요. 제가 정면을 그리는 이유와 같은 느낌이었죠. 사람들은 빛과 공기와 그의 부모로부터 받은 특질로 이루어져 있어요. 얼굴에서 그것들이 잘 드러나고요.



    손정민과 그의 작업실 전경 ⓒprint bakery


    전: 특히 무표정의 얼굴을 그리시잖아요. 제가 해석한 것 외에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손: 무표정에서 그 사람의 진실한 얼굴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웃으면 얼굴이 변하잖아요. 작은 근육들이 움직이고 눈, 코, 입의 방향이 다 변하죠. 그러니 가장 정확하고 진솔한 모습은 가만히 있을 때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오랫동안 봐온 요리 선생님의 초상화를 그려드렸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선생님의 무표정을 보지 못했거든요. 그분은 항상 웃고 있어요. 보내주신 사진도 다 웃는 얼굴이었어요. 꼭! 무표정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려서 사진을 받았더니 지금까지 보던 선생님의 모습과 달리 매서운 면이 있었죠. 평소에 보던 얼굴이 아니니 그리는 데 한참 걸렸어요. 완전히 무표정으로 그리기에는 선생님의 본질에서 조금 멀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하여간 계속 고민하다가 겨우 완성해 가져다드리면서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그리겠다고 했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 하시는 거예요. 그때 좀 소름이 돋고 흥미로웠어요.



    손정민 작업실 전경, 여기저기 놓인 귀여운 도자 오브제들 ⓒprint bakery


    전: 오래 보신 만큼 선생님의 본질적인 부분을 잘 담아내셨나 봐요. 겉으로 드러나는 활짝 웃는 얼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걸러낸 초상화가 됐을 것 같아요. 아, 작가님이 제임스 설터 '어젯밤'에 영감을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읽어보지 않아서 짐작이 가진 않지만, 스릴러고 열정과 욕망에 대한 소설로 알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어떤 점에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손: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그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문장이 엄청 간결하고 되게 깔끔하거든요. 옮긴이의 말에 이런 일화가 나와요. 설터와 함께 영화 '다운힐 레이서'를 작업했던 영화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전하기로는, 설터는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는 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대요. 가장 연약하고 본질적인 것. 저도 모르게 그런 걸 계속 찾고 영감을 받아요. 저한테 인물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계속 파는 우물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잎맥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EDITOR 전혜림  DESIGNER 제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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