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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품을 여지가 있는 사물, 달항아리에 대하여

    요즘 ‘여지가 있다.’는 말을 애착하고 있습니다. 여지는 ‘남을 여’에 ‘땅 지’를 써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뜻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 다른 것, 낯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단어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이 두드러지는 사물이 바로 달항아리입니다.

    최영욱 개인전 'Karma' 전시 현장


    요즘 ‘여지가 있다.’는 말을 애착하고 있습니다. 여지는 ‘남을 여’에 ‘땅 지’를 써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뜻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새로운 것, 다른 것, 낯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있는 단어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이 두드러지는 사물이 바로 달항아리입니다.

    달항아리에 대해 소개할 때, 제작 과정에 대해 꼭 언급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이 내용이 단순히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접하지 못했던 섬세한 설명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꼭 이 부분을 소개하는 이유는 달항아리가 가진 매력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둥그런 백자가 처음부터 ‘달항아리’라고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본래 달항아리는 크다고 해서 대호大壺, 둥글다고 해서 원호圓壺라 불리던 조선 후기의 백자입니다. 유달리 넉넉한 품 때문에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가 어려워 위, 아래 따로 물레를 돌립니다. 따로 만들어진 윗부분을, 뚜껑을 덮듯 아래의 몸통에 얹은 후 가운데를 접합하여 완성됩니다. 때문에 위, 아래의 비례가 맞지 않는 부정형의 모양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완벽하지 않은 부정형의 모양 때문에 달항아리는 ‘누군가를 품을 여지가 있는’ 넉넉한 포용력을 지닌 사물이 됩니다. 조금은 삐뚤한 중심에서, 모나게 틀어진 아랫배에서 우리는 개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틈’을 느낍니다. 완벽한 모습으로 다가갈 틈을 주지 않는 여느 다른 사물들에 비해, 달항아리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삶의 고뇌와 아픔을 품어줄 것 같은 여지를 주는 것이죠.



    최영욱 작업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달항아리에 대해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 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리숙하고 순진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달항아리가 가진 질박한 멋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죠.

    이 매력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예술가가 참 많이 있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김환기는 괴팍할 정도로 이 둥그런 백자를 수집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6.25 전란에 부산으로 피난 가면서 놓고 가는 달항아리 때문에 슬퍼했다는 일화가 유명할 만큼 애착이 유난했다고 합니다. 이에 영감을 받아 파리 시절, 항아리와 달로 대변되는 둥글둥글한 형태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로 불리는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30년대 한국을 방문했다가 달항아리에 매료되어 그대로 영국으로 가져갔고, 이후에 이 항아리가 런던 영국박물관에 소장됩니다. 버나드는 “이 항아리를 가진 것은 마치 행복을 가득 품은 것과 같다.”라며 예찬합니다. 이 항아리는 시간이 흘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눈에 띄게 되는데요, 그는 달항아리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달항아리가 가진 ‘적당한 태도’에 대해 애정 어린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달항아리 예찬 에세이 일부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는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랑받는 최영욱의 달항아리를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최영욱의 작품은 항아리 속에 담긴 아스라한 산수가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매력을 선사합니다. 산수의 무게감 때문에 항아리의 볼록한 입체감이 더 투명하게 빛나죠. 그 빛나는 표면을 실타래처럼 얽힌 빙렬이 메꾸고 있습니다. 최영욱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달항아리를 통해 풀어냅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여줄 것 같은 이 커다란 사물의 갈라진 틈새 길을 그리며 삶의 질곡과 애환, 기쁨과 슬픔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듯 살펴보다 보면, 조선 백자의 투명함과 삶의 깊이를 동시게 느끼게 됩니다.



    최영욱 달항아리 신작 에디션


    최영욱 작업실


    달항아리와 최영욱의 작품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더현대서울에서 9월 29일까지 진행되오니 이번 기회를 통해 달항아리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에 감응하며 담백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DITOR 진혜민 DESIGNER 제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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