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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히 이어지는 차이의 반복, 배세진 전시 비평

    저는 베케트의 희곡 내용과는 달리 배세진 작가의 작품들은 아주 고요하다는 생각을 이어왔습니다. 베케트의 희곡이라는 흙이 사용되었되 그가 손으로 빚어낸 작품, 조각들은 그의 삶 속에서 담담하게 구워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번뇌는 뜨거운 가마 속에서, 마르지 않은 흙들이 맞이할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천천히, 점차 단단하게. 비록 깨어질지언정, 그의 기다림은 창조한 작품, 조각의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들은 창조된 곳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존재로 세상에 내던져져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냅니다.


    배세진 개인전 '지속, 반복, 변화, 순환' 전경 ⓒprint bakery


    배세진 작가는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참조하여, 동명의 연작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재료를 고민하여 흙을 섞고, 도판을 만들고, 틈을 내어 구분한 다음에 숫자를 찍고, 한 조각씩 떼어내어 형태를 완성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20년가량 이어왔습니다.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연작을 몇십 년 동안 작업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특히 저는 배세진 작가가 연작을 시작한 시기가 작가가 대학교 3학년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연작을 펼쳐나가는 경우는 종종 보았지만, 배세진 작가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그보다 이른데다가 작가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강단에서 강의하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으니까요. 다르게 말하자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된 배세진 작가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셈입니다.



    배세진 개인전 '지속, 반복, 변화, 순환' 전경 ⓒprint bakery


    연작은 평면 작품과 입체 작품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작업 과정을 떠올려 보면 그 자취를 따라가면서 감상했을 때 울림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평면 작품의 경우 조각들의 배치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여백에서부터 비롯된 리듬감이 돋보이고, 절제된 색채감과 종이 위에 작가가 그은 기하학적 선이 주는 형태적인 측면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입체작품의 경우에는 같은 배열이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질감과 색채가 주는 인상이 다르고 상대적으로 결집된 형태에서 느껴지는 장엄함이 있습니다. 평면 작품의 조각에 부여된 숫자는 하단에 격자 속에, 입체는 작품은 조각과 조각 틈으로 그 숫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각마다의 숫자는 작품이 완성되어도 멈추지 않고 다음 작품의 조각으로 나아갑니다. 이번 전시에서 조각에 찍힌 숫자는 34만 5천을 넘겼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이렇게 숫자를 새기는 행위가 제게는 마치 무인도에 조난되었지만 고립된 일자를 빗금으로 그으며 생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의 의지와 닮아 보였습니다.



    배세진 작가의 입체 작업 '고도를 기다리며' ⓒprint bakery


    작품을 제작하고 연작을 이어 나가는 지난하고 반복적인 과정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수행’이나 ‘신앙’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거시적인 목표가 있어야 초인적인 힘을 내지 않겠냐는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배세진 작가는 숭고함과 신비주의로 거리를 두는 예술가라기보다, 삶이라는 시간을 공예라는 생활과 노동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조각 하나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 한 조각에 번호 하나가 새겨진 모습 ⓒprint bakery


    작가의 스탬프가 여섯 자리로 딱 들어맞는데 일곱 자리로 넘어가면 어떡하냐는 가볍게 던진 질문에, 20년간 34만 개 정도니까 아마 100만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작가 역시 웃으면서 답변을 주었지만, 그는 이미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화두였던 것이죠. 작품에 담기는 시간은 제작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소요되는 것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작가의 삶이라는 시간도 함께 쓰인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지점이었습니다.



    (좌) 여전히 존재가치를 가진 떨어진 조각들, (우) 전시장 벽면에 붙은 조각들 ⓒprint bakery


    그렇기 때문에 완성된 작품을 안쪽에서 지탱하는 조각뿐만 아니라, 떨어져 나간 조각 하나하나까지 그 존재가치를 획득합니다. 작품을 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완성 후에 탈락한 조각까지 작가는 모을 수 있는 대로 작업실에 보관하다가,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일부를 벽에 붙였습니다. 전시장 6층의 한켠을 가득 채운 깨어지고 그을리고 뒤틀린 파편을 바라보며 손쉽게 이 조각들을 작품으로 구축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파편들은 새로운 작품에서 새로이 기능하고 있고 개별적으로 내재한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면작업 하단, 격자 안에 조각의 일련번호를 찍는 모습 ⓒprint bakery


    이번 전시 제목인 ‘지속, 반복, 변화, 순환’에서 지속과 반복은 어려움 없이 이해가 가지만, 변화의 지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저는 질 들뢰즈의 개념이 실마리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을 통해서 ‘반복’이라는 개념을 통념과 다르게 설정합니다. 모든 실체는 차이를 갖습니다. 이를테면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반한 수많은 연극은 저마다 다른 연출기법으로, 다른 배우들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언어로 풀어낸 작품은 서로 유사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설령 같은 연출자와 같은 배우로 구성하더라도 그 회차와 시간에 따라서도 개별적인 차이를 획득하게 되죠. 이와 동시에 이들은 같은 원작을 삼았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묶일 수 있습니다. 동일한 개념으로 묶어냄으로써 차이는 생략되는 것입니다. 들뢰즈에게 반복은 즉 ‘차이의’ 반복입니다만, 많은 경우 그 차이를 소거함으로써 그것을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의 반복 개념은 그러한 차이를 소거하고 동일하게 유지하는 복제나 재현처럼 동일성을 획득하는 행동과는 다릅니다. 마치 희곡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며 보낸 나날들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수많은 조각들과 제작 과정 역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 깃든 성질을 거시적으로만 바라보고자 한다면, 미시적인 차원에서 지니는 가치들을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들뢰즈는 이러한 반복을 차이의 차원에서 고려할 것을 권유합니다.



    배세진 개인전 '지속, 반복, 변화, 순환' 전경 ⓒprint bakery


    좀 더 앞선 세대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실체는 결코 수로 파악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양으로 무언가를 파악하게 되면, 그것의 양태로만 구분할 수 있을 뿐, 질적인 차이가 없는 한 하나의 실체로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이죠. 배세진 작가가 만든 조각들은 숫자를 부여받음으로써 다른 조각들과 구분될 수 있게 합니다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조각을 대하는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새긴 숫자는 조각에게 이름을 붙이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동일한 작품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도 자신의 존재를 빛내며 전시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편린들마저 누군가에게는 소중합니다.



    ⓒprint bakery


    저는 베케트의 희곡 내용과는 달리 배세진 작가의 작품들은 아주 고요하다는 생각을 이어왔습니다. 베케트의 희곡이라는 흙이 사용되었되 그가 손으로 빚어낸 작품, 조각들은 그의 삶 속에서 담담하게 구워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번뇌는 뜨거운 가마 속에서, 마르지 않은 흙들이 맞이할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천천히, 점차 단단하게. 비록 깨어질지언정, 그의 기다림은 창조한 작품, 조각의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들은 창조된 곳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각각의 존재로 세상에 내던져져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냅니다.



    WRITER 김태휘  EDITOR 전혜림  DESIGNER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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