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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자신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예술가잖아요, 문형태 인터뷰

    문형태에게 동화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요정 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삶의 내밀한 순간 속에서 포착한 ‘인상’들을 펼치는 것에 가깝죠. 모험가와 괴물 대신, 따뜻한 포장마차, 가족의 시간들이 담깁니다. 문형태가 삶 속에서 길어 올리는 천진난만한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문형태의 작업실은 아직 꿈꾸는 소년의 보물 창고 같습니다. 유년의 문형태가 열광했을, 80년대 클래식 TV와 라디오. 바닥을 돌아다니는 손 때묻은 RC카. 책상에 서서 화가의 일상을 바라보는 아톰 피규어. 그리고 한 귀퉁이에 놓인 에미넴의 카세트 테이프와 드래곤볼 만화책들. 작업실 속의 문형태는 여전히 작은 소년의 모습으로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고 쪼물이며 놀잇감을 만드는 것만 같습니다.







    문형태는 천천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아이가 어떤 하루를 맞이한다. 웬일인지 엄마와 아빠가 없는 날이다. 아이는 엉금 엉금 기어 손에 잡히는 장난감들을 하나둘씩 만져본다. 부릉부릉-. 장난감 자동차로 바닥을 밀었다. 아이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자동차 바퀴는 왜 동그랗지?’ 달리다 쓰러진 자동차의 바퀴가 동그랗게 돌아간다. 자동차 옆에는 사과 모형이 있다. ‘사과는 왜 빨갛지?’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손가락은 왜 다섯 개지?’, ‘바닥은 왜 딱딱하지?’ 어리둥절한 아이에게 드디어 엄마, 아빠가 돌아온다. 엄마, 아빠의 품에는 작은 생명이 안겨 있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 그날은 아이에게 동생이 찾아온 날이었다.

    내용은 희미하지만, 인상 깊게 남은 어떤 동화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문형태의 작품을 ‘따듯한 어른들의 동화’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형태에게 동화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요정 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삶의 내밀한 순간 속에서 포착한 ‘인상’들을 펼치는 것에 가깝죠. 모험가와 괴물 대신, 따뜻한 포장마차, 가족의 시간들이 담깁니다. 문형태가 삶 속에서 길어 올리는 천진난만한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문형태가 파리에서 그린 에펠탑 드로잉


    진혜민(이하 진): 안녕하세요, 작가님. 현재 파리에 계시죠. 그곳의 일상은 어떤가요?
    문형태(이하 문): 파리는 창문만 열어도 공기 속에서 물감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도착 후 한참을 앓았지만 덕분에 공상하는 시간이 많아서 작업 생각으로 가득 찬 날을 보냈습니다. 오길 참 잘했다 싶어요.

    진: 파리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 궁금합니다. 어떤 영감을 받고 어떤 작업을 펼치고 있나요?
    문: 낭만적인 분위기에 이끌렸는지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대상이 있거나 혹은 없는, 익숙하면서 사소한 일기처럼요. 약 100일간 머무를 계획이라서 0호 크기의 캔버스 100개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엽서 한 장의 크기로 가늠해왔잖아요. 100일간의 여행 중 작가가 보내는 다정한 엽서로 기록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파리의 작업실 모습


    진: 요즘의 작품은 점점 더 복수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한 명이 등장했던 것이 최근에는 연인 혹은 가족이 나오며 더 많아졌어요. 친밀한 관계들을 통해 어떤 것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문: 한 명에서 연인으로, 다시 여러 사람이 서로를 올라타는 화면으로 변했어요. 지금은 인물이 포개어지거나 중첩되면서 인물 간의 거리가 사라지고 있고요. 과거 인물 각각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현재는 한 명의 인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친밀한 관계)이 많이 등장하는 지금이 특정 한 명을 더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것 같아요.



    파리에서 작업한 작품, 문형태, Roof oil on canavas, 72.7 x 90.9cm, 2022


    진: 작가님은 작품을 그릴 때마다 작품에 대한 노트를 쓰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싹에 대해서 ‘훌륭한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보다 더 위대하게 – 행복한 인간으로 돋자.’고 쓰셨던 것에서는 큰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문: 근래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고민해왔어요. '나'는 가족과 친구와 그 밖의 많은 관계들을 통해 형성된 자아이므로 관계가 시작되고 나면 관계 이전의 독립된 '나'로 분리될 수 없어요. 저는 그 사회성의 원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를 이루는 것이 우리라면, 반대편의 시각에서는 나 역시 누군가를 만드는 역할이기도 해요.
    익숙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주의 깊게 살피려는 시도를 하면 불쑥 그것이 생경하게 다가오잖아요. 저는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누구나 공감하는 일상을 제시하면서 당연한 삶이 새롭게 보이기를 바라왔어요.

    진: 게다가 그림을 ‘하나의 작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 개의 작품을 뭉쳐서 걸어 연출하는 것처럼요.
    문: 화면은 제 삶과 방향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저와 함께 그림 속의 인물들도 자라는 것 같고요. 파리에서의 시간을 기록하는 100개의 0호처럼 어떤 때를 기억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들이 모여 덩이리진 시간같아요. 그 시간의 밀도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작업을 뭉쳐서 걸어두는 연출을 했어요. 이 것들은 모두 각각 다른 시간이지만 연결된 시간이기도 해요. 따라서 일생동안 작업하는 모든 작업이 결국 커다란 하나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고요.

    한국의 작업실 모습


    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작품이 시작된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천진난만한’, ‘동화’라는 단어는 작가님의 작품을 수식하는 단어들입니다. 작가님에게 ‘동심’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문: 만일 제가 제 작업을 동화와 연결한다면 動(움직일 동)과 畫(그림 화)를 사용할 것 같아요.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이라면 어떤 수식어도 마음에 들테니까요. 일흔 노인도 일곱 살 아이도 화가에게는 친절해요. 몸을 움직이고 손을 놀리는 것이 인간의 첫 번째 언어였듯이 그림은 노력하지 않아도 거기 동심이 들어있거든요. 제가 늘 바라는 것은 '그리기' 자체의 동경입니다. 그 것이 화가에게는 동심이 아닐까 싶어요.

    진: 작업실의 많은 사물들 중에 가장 애착하는 아이템을 말해주세요. 그 사물에 대한 뒷이야기도 있다면 함께요.
    문: 이젤 같아요. 바닥에 눕혀서 그림을 그리다가 즐겨 찾던 화방에서 보내주신 이젤이었어요. 값은 돈이 생기면 달라고 하셨고요. 지금까지 그려온 모든 작업을 잡아주던 이젤이에요. 팔레트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붓에 묻은 물감 찌꺼기를 이젤에 닦는 습관이 생겼는데, 덕분에 지금까지 그려온 모든 작업의 흔적이 거기 함께 묻어있어요. 견고한 시간도 인내의 숭고도 느끼게 해주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젤


    진: 작업실을 보면 수집벽이 있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가요?
    문: 전시회란 작가의 생각을 보여주는 쇼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어요. 그 쇼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오브제를 틈틈 모으다 보니 선호하는 물건들이 쌓이게 된 것 같아요. 제 작업의 컬러 때문에 오브제들이 모두 낡고 오래된 물건들로 채워진 것 같습니다. 제 작업이 관계와 기억에 대해 풀어지듯이 낡은 물건들이 품고 있는 각각의 시간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진: 수집벽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과 추억을 소중히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작가님에게 살면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문: 행복했던 기억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아픈 기억으로 남기도 했어요. 이제 와서 소중했던 기억들이 모두 아픈 걸 보면 지난 시간들 모두가 행복했었나 봐요. 훗날에는 지금이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했던 날이 지금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말예요.





    진: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이 이제 딱 하나의 작품만 그릴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그리고 싶은가요?
    문: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어요. 아마도 제 생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기일 것 같아요. 내일도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 생각하다가 그날 밤 숨을 거둘 수도 있겠죠. 저는 제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나무 액자에 그림을 담았던 것처럼, 나무 관에 담긴 제가 제 생의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보살피고 가꾸고 노력했던 거대한 시간이 담긴 제 자신만큼 떳떳한 작품은 없을 것 같거든요. 저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완성해나가는 예술가라고 믿어요.





    EDITOR 진혜민  DESIGNER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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