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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미술 여행, 반 고흐와 친구가 된다면

    오늘 함께 떠날 곳은 네덜란드입니다. 여행기를 공유해 줄 K가 그곳에 다녀온 지는 한 달이 됐습니다. 아직 유럽 가을 공기가 코끝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K는 홀로 떠난 이번 여행을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했던 시간이자 소중한 친구를 사귄 시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네덜란드 풍경 ⓒ김은영


    오늘 함께 떠날 곳은 네덜란드입니다. 여행기를 공유해 줄 K가 그곳에 다녀온 지는 한 달이 됐습니다. 아직 유럽 가을 공기가 코끝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K는 홀로 떠난 이번 여행을 떠올리며“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했던 시간이자 소중한 친구를 사귄 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을 오가며 총 7일의 시간을 네덜란드에서 보냈는데요, 그동안 15개가 넘는 미술관을 방문했다고 해요. 하루에 적어도 두 개의 전시장을 돌아다닌 셈입니다. 저는 K가 부지런히 미술관에 오가며 어떤 생각을 했고, 그 바쁜 와중에 누구와 친구가 되어 돌아온 것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행기를 들려달라 부탁해 따끈한 네덜란드 미술 여행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왔어요. 함께 들어볼까요.



    Vincent Van Gogh, La Nuit étoilée, Huile sur toile, 73x92cm, 1888 © Musée d’Orsay, Dist. RMN-Grand Palais


    From. K

    여러분은 우연 혹은 운명처럼 작품이 다가왔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르세 미술관의 한 그림 앞에 섰을 때가 떠오릅니다.

    유독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던 방, 특히 한 그림 앞에서 다들 손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사람들 사이로 얼핏 보이던 작품과 점점 가까워지고, 온전히 그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저는 처음으로 작품에 몰입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눈에 비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교과서나 미술책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 작은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에너지가 너무 강렬했습니다. 전시장이 빛으로,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한낱 그림에 어떻게 몰입하냐고, 어쩌다 눈물까지 흘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때로는 그림 앞에서 서툴러요. 가끔은 그림에서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가 이상한 건 아닐까 고민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이제는 그림과 그 너머 그린 이의 마음에 닿게 되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에 정답은 없겠지만 미술 작품에 몰입하는 법, 나아가 작가와 친구가 되는 저만의 방법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본 '고흐, 영혼의 문에서' ⓒ김은영


    빈센트와 저의 인연은 파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르세에서의 첫 만남 이후,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 꼭 가보리라 다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가와 나만 아는 약속은 저를 또 다른 여행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끌었습니다.

    작가와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친구를 사귈 때처럼 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기다리듯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영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쫓았습니다.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 ⓒ김은영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인데, 빈센트가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1년 동안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 그린 그림 중에는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며 그린 '아몬드 나무'도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 그림의 주인공, 테오의 아들이 훗날 정신병원에 찾아와 빈센트를 추억하고 그와 그의 그림이 더 이상 떠돌지 않고 머물 곳을 만들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매년 무려 150만 명의 사람들이 다녀가는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입니다.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뮤지엄에서 만난 반 고흐 ⓒ김은영


    작가의 인생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 되면 미술관은 더 이상 그저 그의 그림을 전시한 미술관이 아니게 됩니다. 빈센트와 테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애정과 시간이 담긴 집으로 초대받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반 고흐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만난 빈센트는 여러 얼굴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슬픈 얼굴, 어딘가 화가 난 듯한 얼굴, 기뻐 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얼굴들로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듯했죠. 6년 만에 만난 친구, 빈센트의 얼굴 앞에서 저는 그를 더 깊게 알아가고, 저의 고민과 걱정을 내비쳐보기도 했습니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에 저는 특별할 것 없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지쳐 있었거든요. 한 발짝 떨어져 그의 그림을 보다 보니 제 삶의 고민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술관의 그림을 통해, 글을 통해 저의 고민에 이렇게 대답해주더라고요. 나만의 방식으로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요.



    로테르담 'DE POT' ⓒ김은영


    미술뿐만 아니라 건축으로도 유명한 네덜란드는 뉴욕만큼 빠르지도 파리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딱 자전거의 속도로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빈센트를 만났던 암스테르담을 지나 로테르담으로 향했고, 독특하고 직선적인 건축물 사이로 동그랗고 큰 화분처럼 생긴 미술관을 발견했습니다. 로테르담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라며 추천해준 이곳의 이름은 ‘DE POT’. 우리나라 말로 하면 큰 창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생긴 것도 정말 거대한 그릇 같았습니다.



    로테르담 'DE POT' 전시 전경 ⓒ김은영


    이곳은 외관만큼 내부도 실험적인 전시들로 가득했습니다.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설치된 작품의 소리가 온 미술관을 울리기도 하고, 한 전시실에는 거대한 기차 모양의 작품이 움직이고 있기도 했습니다.



    로테르담 'DE POT' 전시 전경 ⓒ김은영


    실험실 같았던 이 미술관에서 제 걸음이 가장 오래 멈춘 곳은 그곳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한 전시실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새롭게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로테르담 'DE POT'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 ⓒ김은영


    그곳에서 빈센트를 다시 만났습니다. 액자의 앞면이 아닌 뒷면까지 볼 수 있는 사이로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반가운 마음도 들었어요. 액자의 뒷면에는 작품이 누구 소유였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와 같은 사소한 정보부터 누군가가 쓰고 넣어둔 편지, 장난스러운 낙서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담겨있었습니다. 빈센트의 그림 뒷면에 적힌 글씨를 보기 위해 작품 뒤로 얼굴을 가까이했을 때, 마치 그가 “나는 이렇게 지냈어”하고 작게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액자의 뒷면에는 네덜란드에 오기 전 이 작품이 어느 곳을 거쳐 왔는지 조그맣게 적혀 있었거든요. 잘 닦인 정결한 겉모습이 아닌 뒤편의 비밀스러운 마음을 보여준다는 건 이제 정말 친한 친구가 된 것 아닐까요?



    암스테르담의 한 서점 ⓒ김은영


    한눈에 작품에 매료되어 작가를 좋아하게 될 수도, 마음에 든 작품들이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우연히 알게 된 후로 작가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보자마자 친해지고 싶다고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점점 알아가며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 것처럼요. 이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수많은 작가 중 운명적으로 내게 찾아와 준 작가들과 친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용기를 내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의지만 있다면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도, 지금의 내 감정을 그림으로 위로받는 경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운이 좋다면, 저처럼 우연한 기회에 작품의 뒷면까지도 보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저는 다음에 또 어떤 작가와 작품, 친구와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요?




    WRITER 김은영 EDITOR 전혜림  DESIGNER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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