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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을 따라 흐르는 선율, FOCUS 작가 4인 인터뷰

    FOCUS전시의 주인공 김찬송, 아방, 이재민, 지민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이 이들의 작품에 닿았을 때. 그 시선에 음표들이 얹어지고, 미세하게 떨리며 울려 퍼지는 선율을 상상해 봅니다. 그 선율에 따라 여러분의 FOCUS 플레이리스트명을 붙여 보는 건 어떨까요. 그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띄워 봅니다.

    싱가포르의 자연 속에서 작업 중인 FOCUS 전시 작가 이재민 ⓒ이재민




    연말,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하면 이런 문구가 보입니다. ‘2022년 00님이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은?’ 클릭하면 한 해를 함께했던 노래 리스트가 펼쳐지죠. 그 안에는 모두가 아는 그 노래가 있을 수도, 혹은 나만 아는 가수들의 노래들만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공통점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온도로 여러분의 마음에 진동을 울린 노래들이란 점이겠지요. 어떤 유명 시상식에서 1위를 한 노래이건, 모두가 입을 모아 좋다고 하는 그림이건. 내 마음에 닿지 않으면 선율이 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리는 게 예술인 듯합니다. 대신 아주 화려하고 빛나진 않을지라도, 나의 시선을 옮길 때마다 언뜻 반짝이는 것에 온 마음을 빼앗겨보는 것 역시 하나의 예술적 경험일 것입니다.

    이번 PBG에서 준비한 FOCUS전시에 플레이리스트명을 붙인다면 어떤 제목이 될까요? 저는 ‘아직은 나만 알고 싶은’ 이라고 붙이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너무 좋기에 더 큰 인기를 얻을 게 확실하지만, 나에게 특별한 울림을 주었던 작품들을 모두가 알게 되면 혹여나 너무 보편적인 취향이 될까 아쉬운 그 마음. 다들 아시지 않나요? 다행히 FOCUS전시의 주인공 김찬송, 아방, 이재민, 지민경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욕심은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4인의 작가 모두가 작품에 대해 한 마디 한 마디를 아끼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림을 보는 이들 각각에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고 싶어 하는 작가들을 보며, 저의 FOCUS플레이리스트명을 몰래 수정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시선을 따라 흐르는 선율’로 말이에요.

    여러분의 시선이 이들의 작품에 닿았을 때. 그 시선에 음표들이 얹어지고, 미세하게 떨리며 울려 퍼지는 선율을 상상해 봅니다. 그 선율에 따라 여러분의 FOCUS 플레이리스트명을 붙여 보는 건 어떨까요. 그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래의 이야기를 띄워 봅니다.







    Playlist #1 김찬송


    김찬송, The Surface, Oil on canvas, 72.7x53cm, 2022



    김찬송은 몸을 통해 경계의 무너짐을 이야기합니다. 작가 자신의 몸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몸의 얼굴, 즉 정체성이 사라집니다. 화폭에 담긴 익명의 몸은 작가 자신일 수도, 타인일 수도 있는 열린 상태가 되죠. 그림을 바라보는 이의 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인 것 같기도, 타인인 것 같기도 한 몸을 응시하며 감상자는 그림에 점점 가까이 다가섭니다. 포개어지고 경계가 흐려진 이미지가 오히려 더 궁금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나와 타인, 외부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한 무언가를 만나게 됩니다.


    Q. 이번에 전시하시는 두 시리즈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신체랑 식물을 그린 두 가지 시리즈를 전시합니다. 신체를 그린 작품은 타이머에 맞춰 제 몸을 찍는 것부터 시작해요. 얼굴 없는 몸이 담긴 사진을 페인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물감이 흘러내린다거나, 뭉치게 돼요. 그렇게 낯선 몸으로 변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식물을 그린 작품은 제가 프랑스에 작업하러 갔을 때 마주쳤던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자연스럽게 모여 있다고 느낀 숲의 식물들이 알고 보니 전부 서로 다른 대륙에서 옮겨져 온 것들이었어요. 기존에 있던 나무와 다른 곳에서 온 나무들이 물에 비쳤을 때 경계가 무너지고 표면에서 섞이며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린 게 ‘The Surface’ 작품이에요.



    김찬송의 작업실 풍경, 풍경에 녹아든 식물들 ⓒ김찬송



    Q. 두 시리즈 모두 ‘경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두 시리즈의 차이점도 있을까요?
    네, 두 시리즈 모두 의미적인 면에서는 비슷해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에서 발견한 낯선 부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신체 작업은 익숙한 ‘나’에게서 발견한 타인의 모습이고요. 식물 작업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였던 정원의 식물들이 사실 각각 다른 대륙에서 와서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다만 작업 방식에는 차이가 있어요. 신체 작업은 사진을 찍은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고, 그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그려나가요. 신체 작업은 완벽한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식물 작업은 스케치 없이 시작해 형태를 조금씩 쌓아 나간다는 점이 달라요.

    Q. ‘불확실성’이 회화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요. 작업을 진행하며 작가님이 ‘불확실성’을 즐기는 방법이 있을까요?
    캔버스 위에서는 어떤 일이든지 생길 수 있거든요. 작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우연한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저는 두터운 물감을 갖고 그림을 그리는데요. 물감이 튀거나 흘러내리거나, 붓질이 지나가며 필연적으로 생기는 자국들 같은, 일종의 실패의 흔적들을 그대로 활용해요. 표현적인 면에서 경계가 무너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형태에 있어서 완전한 것보다는 경계가 불확실해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여지를 두는 편이에요.



    김찬송의 작업실 ⓒ김찬송


    Q.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까요?
    ‘어떤 일이 우연히 벌어진다는 것’과 관계가 있어요. 인물을 그린 그림도 우연적인 사건에서 시작됐거든요. 제가 혼자 저를 찍다 보니 우연히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사진이 나왔어요. 정체성이 불확실한 몸을 보며 이 몸이 나의 몸이었다는 걸 알고 봐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타인의 몸으로 여겨진다는 점. 바로 그 지점에서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둔 이미지로 느껴졌어요.

    Q. 사진을 찍는 과정도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네, 사진을 한번 찍을 때 몇 백 장씩 찍어요. 혼자 찍는 거라 초점이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실패한 사진이 대부분이에요. 그림을 그릴 땐 그중 초점이 잘 맞는 사진을 골라 그 경계를 무너뜨리며 그리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흐릿한 이미지들의 영향을 받아요. 실패한 이미지와 완벽히 찍힌 사진들 사이의 간극을 오가면서 그려요.

    Q. ‘고정되지 않는 것’이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방향 같아요. 그래서 향후 어떤 작업을 해 나가실지 더 궁금해집니다.
    몸이랑 식물이라는 굉장히 확실한 주제들이 있잖아요. 특히 몸은 우리가 살아가는 나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 생각해 늘 관심을 둘 것 같아요. 다만 앞으로는 다른 표현을 생각해 보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몸 그 자체를 그린다면, 앞으로는 어떠한 상황에 놓인 몸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고요. 매체나 표현방식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보고 싶어요. 표현방식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열어 두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Playlist #2 아방


    아방 작가와 그의 작업실 ⓒ아방


    아방은 우리를 둘러싼 ‘당연한 것들에서의 해방’을 이야기합니다. 작품에는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이상하지도 않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묘한 눈빛에 이끌려 그림 속 세상에 초대받는 순간. 화폭에 가득 찬 밝고 화려한 색감과 거대하게 표현된 과일들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상함과 특별함의 차이는 무엇인지, 남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도 당연한 것인지. 아방의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은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Q. 작품들이 유독 오감을 자극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작품을 보는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각이나 감정을 떠올리며 그리시는 편인가요?
    그 부분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한정 짓지 않으려고요. 사람들이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끼잖아요. 따뜻하고, 시원하거나. 편안하고, 즐겁거나, 아니면 새콤달콤하거나.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또, 동시에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내 자아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는 걸 느낍니다. 그렇게 한 사람이 가진 다양한 면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꺼내어 보는 데에 제 작품이 색다른 자극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Q.‘한 사람이 가진 다양한 자아’라는 표현이 작가님의 작품을 수식하는 ‘자유롭고 섹시한’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마치 반전 매력을 가진 사람이 섹시한 것처럼요. 구성에서도 ‘자유롭고 섹시함’을 느꼈는데요. 특히 과감하게 크롭 된 인물들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다 보여주기 싫은 것 같아요. 보여주고 싶은 부분 외의 다른 곳은 상상은 할 수 있되, 쉽게 추측할 수는 없도록 말이에요. 예를 들어, 인물의 눈 아래가 잘려 있다면 그건 눈빛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서 다른 부분을 가린 거예요. 눈빛이 중요한 그림들도 있거든요. 만약 그림 속 사람의 눈이 보인다면 눈을 마주치면서, 눈동자를 보며 감상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방의 석고 작업 ⓒ아방


    Q.‘다양한 자아’라는 표현과 이어지는 질문인데요. 작업적으로도 다양한 매체로 접근하시는 걸로 알아요. 일러스트레이션, 원화, 조각부터 여러 브랜드와 협업 하셨는데,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매체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기존 석고상 작업은 기성 석고상에 작업을 한 거였거든요. 직접 조각, 세라믹 등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또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요. 앨범 아트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커머셜 작업 외에도 음악이나 비디오를 활용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에 출품하신 작품 중 눈 맞춰 보기 좋은 작품이 있을까요?
    ‘세 자매의 소풍’이라는 작품이요. 보면 조금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표정도 좋고, 셋이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바라보고 있잖아요. 다른 작품들도 각각 그림 속 상황들이 있어요. 그림을 보는 분들이 그 자세를 취했을 때나, 그 사물과 함께 있을 때의 기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Playlist #3 이재민

    이재민의 싱가포르 작업실 ⓒ이재민


    이재민은 ‘낯선 것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한국으로 활동하다 다시 싱가포르로 떠난 작가는 어느 순간 모두가 ‘이방인’으로서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매 순간 낯선 것들과 부딪혀야 하는 삶에서 작가는 낯섦을 ‘나의 고유한 뿌리가 될 양분’으로 흡수하기를 권합니다. 작가가 싱가포르에서 마주한 낯선 하늘의 색과 이파리의 형태와 같은 모든 걸음걸음을 영감으로 받아들여 탄생한 ‘Walking in the Jungle’시리즈처럼 그림을 보는 이들도 일상의 자극들을 즐거이 감각하고 풍덩 빠져보자고 손짓합니다.


    Q. 이번에 전시하는 두 시리즈 속 인물들의 눈빛이 다르게 느껴져요.
    ‘Stranger’, Walking in the Jungle’ 두 시리즈를 전시하는데요. 두 시리즈를 그릴 때 시기적 차이가 있는데, 각각 제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어요. 러시아 유학 이후에 작업했던 ‘Stranger’ 시리즈를 그릴 땐 시선이 제 내면을 향하고 있었어요. 그림을 보면 인물이 표정에 뭔가 많이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몽롱함이나 쓸쓸함 같은 감정들이요. 유학 시절에서도 그랬고,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에도 어딘가에 완전히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못 받았거든요. 그런 내면의 정서가 담겼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으로 시선이 옮겨갔어요. Walking in the Jungle 시리즈에는 세상을 향한 시선이 담겨 있어요.

    Q. 시선의 변화가 생긴 데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작가로서 낯선 환경을 직면하고, 새로운 감각들을 받아들이는 게 불편함보다는 하나의 기회로 느껴졌어요. 4년 전쯤 싱가포르로 이주했는데, 이곳의 자연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너무 좋아 매일 밖을 걷고 있어요. 매일 걸어 다니며 감각하는 세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집 뒤에 바로 어반 정글이 있는데 작은 풀, 구불구불한 이파리 형태부터 공기의 색채 같은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영감을 줘요. 내 눈에 익숙했던 것과 다른 풍경들을 저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해 내는 걸 작가로서의 의무이자 소명으로 여기고 있어요.



    이재민이 담은 싱가포르의 풍경 ⓒ이재민


    Q. 말씀하신 ‘작가적 시선을 갖고 산다’는 게 어떻게 보면 늘 여행자로서 사는 느낌인 것 같아요.
    맞아요. 여행과 비슷해요. 여행을 하면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들을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언어의 장벽이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도 발생하고요.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그런 불편함들을 수용하다 보면 그것들이 ‘나만의 뿌리’를 만들어가는 양분이 되죠. 이곳 싱가포르에서 마주하는 자연에도 어쩌면 ‘불편함’으로 느껴질 만한 것들이 있어요. 어린아이만 한 낙엽이 떨어질 때도 있고, 난데없이 파충류가 나타날 때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징그럽다거나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있는 그대로 감각해 보면 좋겠어요. 야생동물 소리, 잎사귀에 맺힌 빗물들과 달팽이 같은 하나하나를요.

    Q. 지금 ‘이방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이곳에서의 이방인 타이틀이 싫지 않아요. 동양의 사상을 갖고, 서양의 예술, 교육을 접하고, 동남아시아의 제3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죠. 사실 디지털노매드 시대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문화가 믹스되어 이제 ‘원래’라는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나만의 뿌리를 만들어가는 시대죠. 여러 문화적 소스와 감각들을 받아들이며 유니크한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삶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Playlist #4 지민경


    지민경의 얼굴, 그리고 자연 ⓒ지민경


    지민경은 ‘자연스러움’을 담아냅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 풍경이기도 한 얼굴들은 지민경의 붓질을 통해 피어납니다. 원래 그 자리에 품어져 있던 씨앗이 싹을 틔우듯, 자연스레 나비가 날아와 앉은 듯. 그려지기보다는 틔워지고, 피어나고, 머물렀다 간 지민경의 얼굴들은 그저 그 자리에 있습니다.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자연 소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유연성이 제 그림과 잘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장르에 구별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지와 먹을 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어릴 적부터 문화적으로 접해왔던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게 작품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삶과 그림이 잘 맞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에서도 그런 편안함, 자연스러움의 정서가 느껴져요.
    네,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자주 고찰해 봐요. ‘자연’이라는 단어가 쉽게 쓰이는 단어이지만요. 그 사전적 의미를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스스로 있다’는 뜻이거든요. 저도 무언가를 재연하기보다는 원래 스스로 있는 걸 그 방식대로 존재시키는 거예요.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거니 인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연’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Q. 자연스러움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림을 그릴 때 ‘사각형’으로 틀을 정해 놓고 그리지 않아요. 구겨져도, 펴져도, 두꺼워도 각각 한지의 맛이 있거든요. 종이 자체에서 작품이 시작된다고 느끼기도 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어떤 형상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종이를 펼쳐 놓고 보면서 비로소 확장되는 걸 느껴요.우선 ‘나비 소녀’를 예로 들면, 나비 같은 여자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나비 같은 여자에서 시작해 나비의 이면, 나비의 다른 부분들을 생각하며 확장해나가요. 나비의 패턴들, 얇고 잘 부서질 것 같은 특성 같은 것들이요. 그런 특징들이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지민경의 붓이 지나간 자리, 자연의 흔적들 ⓒ지민경


    Q. ‘자연’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작가님이 쓰셨던 글 하나가 떠올랐어요. ‘나무의 눈을 보면 사람의 눈 코 입들이 그려지듯 지나간 자국들과 한지에 결들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이미지들이 종이 위에서 연속해서 떠올렸다’는 글이요.
    하나의 얼굴을 동그란 공간으로 여겨요. 어린 시절부터 우리가 사람 얼굴을 그릴 때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잖아요. 얼굴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눈코입의 자리에 제가 봤던 자연의 흔적들을 표시해둔 거예요.

    Q. 자연의 흔적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그려지는 모든 작품들이 사실 사람이 건들고 지나간 흔적이잖아요. 그림에서는 남겨진 것들이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기억이기도 하고, 바라는 것을 표시한 것이기도 해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선한 느낌이 좋거든요. 나비의 날개같이 모난 것보다는 둥그스름한 것, 딱딱한 것보다는 유연한 것. 강하기도 한데 약하기도 한 게 좋아요. 그런 게 사람과 자연의 모습이니까요. 보시기에 따라 다양한 걸 느끼시겠지만 모두들 화면 내에서 그런 재미들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DITOR 이지은 DESIGNER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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