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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하다, 피우다, 허명욱의 로얄핑크

    허명욱 작가는 옻칠을 기반으로 평면, 입체, 일상에 쓰이는 가구와 테이블 웨어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전개합니다. 뛰어난 보존성과 지속가능성에 더해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옻칠의 미적 가치를 일상 속 사물들로 향유해 보세요.

    12월 15일까지 분더샵 청담에서 진행된 허명욱 개인전 'OVERLAYING' 현장 ⓒprint bakery


    허명욱 작가는 옻칠을 기반으로 평면, 입체, 일상에 쓰이는 가구와 테이블 웨어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전개합니다.



    작가가 직접 만든 옻칠 색들 ⓒprint bakery


    비교적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옻칠’은 그 역사가 무려 4천여 년 전에 시작되어 우리 생활 속에서 고급스러움과 오랜 보존이 필요한 곳곳에 다양하게 활용되어 온 천연 도료입니다.

    '신의 혈액’으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가장 귀한 도료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옻칠은 예로부터 그 아름다운 색감과 보존성을 인정받아 다양한 궁중 의식주에 활용되었습니다. 화려한 색과 문양으로 건물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던 단청 중에서도 옻 단청은 가장 고급 방식이었으며, 칠기는 금·은 그릇과 함께 왕실의 그릇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붉은빛을 띠는 ‘주칠’ 칠기는 사치품으로 취급되어 왕에게 진상하는 용도로만 제작되었습니다.



    프린트베이커리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허명욱의 로얄핑크 테이블 웨어 ⓒprint bakery


    옻칠이 이렇게 귀한 도료로 여겨진 이유는 희소성 때문입니다. 옻칠은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추출한 진액을 뜻합니다. 대물림이 가능한 우수한 옻칠 성분을 가진 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자라며, 4년에서 10년산 옻나무에서만 한정적으로 채취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제하고 색을 내는 모든 단계에 걸쳐 각 장인이 손길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과거에는 국가적으로 관청을 두어 옻나무와 장인들을 관리하며 옻칠 생산에 직접 관여했습니다.

    한편, 4천여 년의 시간 동안 왕실 문서에서 옻칠이 빠지지 않고 언급된 또 다른 이유로는 ‘보존성’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760년 동안 온전하게 보존된 팔만대장경이 옻칠의 뛰어난 보존 효과를 증명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적으로 분석한 옻칠 성분은 각종 산과 알칼리에 부식되지 않으며, 내염성, 내열성 및 방수, 방충, 방부, 절연, 전자파 차단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뛰어난 보존 효과에 더해 공해 물질을 전혀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인 도료인 옻칠은 잠수함, 조선, 자동차, 해저 광케이블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사용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12월 15일까지 분더샵 청담에서 진행된 허명욱 개인전 'OVERLAYING' 현장 ⓒprint bakery


    우수한 내구성에 기반하여, 옻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유한 색을 비춥니다. 옻나무에서 막 채취한 수액은 노란빛이 조금 도는 미색을 띠는데 이 옻이 마르면 검은색이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은빛이 날아가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옻이 핀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발색 과정을 거치기에 옻칠은 같은 옻나무에서 같은 정제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놓여 있는 환경의 온, 습도, 그리고 건조 조건에 따라 분명하게 다른 색감을 냅니다.



    옻칠을 하는 허명욱 작가


    옻칠의 색은 필연적으로 옻칠을 여러 겹 쌓는 행위와도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옻칠은 한 번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잘 말린 후 여러 번 말리고 덧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맨 위의 색은 빛과 공기를 만나며 자연스레 피어나고, 아래 중첩된 색들 역시 조금씩 배어 나와 깊이 있는 색감을 이룹니다. 시간에 따라 퇴색하는 화학 도료와는 반대로 옻칠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유하고 독특하게 발색하는 이유입니다.



    12월 15일까지 분더샵 청담에서 진행된 허명욱 개인전 'OVERLAYING' 현장 ⓒprint bakery


    옻칠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색할 뿐만 아니라 칠한 표면의 결을 살려내기도 합니다. 목공예품에 처음 옻칠을 했을 때엔 나뭇결이 가려진 듯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색을 찾는 나뭇결을 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옻칠이 가진 고유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허명욱의 로얄핑크 테이블 웨어로 차린 연말 식탁 ⓒ김보영


    나무를 기르고, 수액을 채취하고 정제하여 발색하기까지 모든 단계에 장인의 정성이 담겨야 하기에 20세기 후반부터 그 명성을 뒤로한 채 잊히고 있던 옻칠은 ‘지속가능성’, ‘친환경’을 고려하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물리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실용적 가치, 환경적 가치에 더해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옻칠 사물들을 통해 일상 곳곳에서 미적 가치를 향유해 보시길 바랍니다.





    EDITOR 이지은  DESIGNER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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