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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미술 여행, 자연이 스며든 공간들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느낀 것은,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인 만큼 미술관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제주에 왔으면 바다를 봐야지!’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미술관에도 자연이 있더군요. 안과 밖으로, 제주를 양껏 누리는 여행을 하시는데 이 미술 여행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주도 바다 ⓒ전혜림


    우리에게 선물 같은 제주도를 만끽하는 방법은 제각각일 겁니다. 갈 때마다 좋고 애틋한 그 섬에서 여러분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하염없이 바다 바라보기, 싱싱한 해산물 맛집 찾기, 오름 오르기.. 저는 그중 제주에서 미술을 즐긴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제주의 미술관을 정복하리라 마음먹었던 해가 2018년 겨울입니다. 그때는 아직 한국 미술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였습니다. ‘이왈종’, ‘김창열‘ 이렇게 제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이어 붙는 화백의 이름이 낯설었죠. 꼼꼼히 알아보고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궁금증에 이끌려 방문했을 때의 설렘 또한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이왈종 미술관 ⓒ전혜림


    바다를 뒤로하고 작은 언덕을 오르면 불긋한 동시에 하얀 덩어리의 건물 하나가 눈에 꽉 찹니다. 서귀포에 위치한 이곳은 ‘이왈종 미술관’입니다. 문을 여는 순간 경쾌한 소리가 귓가를 기분 좋게 자극합니다. 유리문 가까이 달린 커다란 풍경 소리였습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문가에서 서성였던 기억이 납니다.



    (좌) 이왈종 미술관 건축 모형, (우) 건물 외벽 ⓒ전혜림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바로 눈에 띈 것은 건축 모형이었습니다. 건축 모형은 보통 건축가가 건축주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듭니다. 하지만 이 모형은 건축주 이왈종이 직접 도자기를 빚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서귀포에 살던 집을 헐고 큰 작업실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모형을 만들었고 우연히 만난 스위스 건축가 Davide Macullo와 한만원 건축 설계사와 공동 작업을 하여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건물 내에는 작업실과 함께 전시 공간 그리고 어린이 미술교육실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건물 외벽은 멀리서 봤을 때 햐얀 도화지에 불그스름한 꽃이 듬성 그려진 모습 같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붉은 벽 위로 흰 시멘트가 거칠게 칠해진 듯했습니다. 처음 볼 때는 몰랐으나 전시장 내 이왈종의 그림을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과 건물의 벽이 비슷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왈종, 제주 생활의 중도 11, pigment printing, ed.150 ⓒprint bakery


    이왈종의 그림은 제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합니다. 그의 캔버스 안에서 새는 자유롭게 날고, 사람은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죠. 밝고 화사한 색채는 놀라운 생명감을 선사해서 우리를 꿈꾸게 합니다. ‘제주의 정취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림입니다. 크고 작은 이왈종의 작품을 보며 제주 여행을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이왈종 미술관 ⓒ전혜림


    이 미술관의 매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바깥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이렇게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섬은 ‘섶섬’입니다. 이왈종의 조형물도 현무암 좌대 위에 듬성듬성, 섬처럼 옥상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새 조각은 제주 하늘을 나는 새들이 잠깐 쉬어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을 채운 이왈종의 작품과 옥상 위 풍경은 저에게 제주의 자연을 한 웅큼 안겨주었습니다.



    유민 미술관 ⓒ전혜림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서귀포 섭지코지에 위치한 ‘유민미술관’입니다. 건축계 최고 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물로 유명합니다.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동시에 빛과 주변 풍경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에 탁월한 건축가입니다. 해외 곳곳에 설계된 다다오의 건물을 몇 군데 가봤던 터라, 제주에서 만나는 그것은 어떤 모습일지 정말 기대가 되었습니다.

    미술관에 가기까지 길은 조금 멀고 험했지만 건물은 그 시간을 다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니 제주의 흔한 돌담이 그렇듯 현무암이 차곡 쌓인 거대한 현무암 파사드가 우리를 압도합니다.



    유민 미술관 ⓒ전혜림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다 보면 현무암 담과 노출 콘크리트 벽 사이로 작은 틈이 보입니다. 들여다보니 제주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노란 유채꽃부터 푸른 바다, 그리고 그 너머의 섬까지요.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 같은 저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니 숭고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유민 미술관 ⓒ전혜림


    낮은 경사의 램프를 따라 계속해서 내려 들어갑니다. 현무암이 쌓인 벽 한 번, 노출 콘크리트 벽 (상단 우측 사진) 한 번씩 사이좋게 통과해가며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죠. 강하게 내리쬐는 제주의 겨울 햇살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 희미한 틈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전시 건물 입구에 다 왔습니다.



    유민 미술관 아르누보 컬렉션 ⓒ전혜림


    유민미술관은 ‘유민 아르누보 컬렉션‘을 소장하여 이 공간에서 전시하고 있는데요, 컬렉션은 중앙일보 선대회장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1917~1986) 선생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수집한 낭시파 (Ecole de Nancy) 유리공예 작품들입니다.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은 1890-1910년대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짧지만 강렬한 자국을 남겼습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르누보의 표현법은 식물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유려하고 화려한 곡선 무늬를 특징으로 합니다. 전시장에서 만났던 유리공예 작품들도 자연을 닮아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전혜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제주 내륙, 한림읍에 있는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입니다. 역시 이곳을 방문할 때는 화백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제주도 미술관’을 서칭하던 중, 검고 단단한 모습의 건물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갔죠.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버스에 내려서도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검은 물체가 보였습니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미술관은 간결한 형태지만 묵직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전혜림


    내부는 빛이 정말 잘 들어오고, 곳곳에 제주의 자연이 스며있었습니다. 짧은 복도는 큰창이 나서 자연이 건물 안까지 들어온 느낌이었죠. 세월이 그대로 쌓인 돌담의 모습을 지켜보니 이 건물까지 원래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김창열, 물방울1, pigment printing, ed.150 ⓒprint bakery


    높은 층고에 넉넉한 넓이의 전시장은 물방울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전시장에서 2전시장으로 넘어가도, 여전히 물방울이 이어졌습니다. 그 웅장함에 가슴이 마구 뛰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꾸준히 그리는 인내심과 열정을 바라보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거장을 마주하면 이런 기분이군요. 모였다가 펼쳐지고, 흘렀다가 멈추는 물방울의 다양한 표정에 말을 잃고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김창열 그림에 대한 제 첫인상은, 그렇게 깊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 미술관이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제주도 바다 풍경 ⓒ전혜림


    제주에는 소개 드린 세 곳의 미술관 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한 미술 여행보다 더 흥미로운 일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느낀 것은,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인 만큼 미술관에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제주에 왔으면 바다를 봐야지!’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미술관에도 자연이 있더군요. 안과 밖으로, 제주를 양껏 누리는 여행을 하시는데 이 미술 여행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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