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 위베이크

    별 보는 화가,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를 만나다 Vol.2

    <별을 붙잡는 일> 전시를 진행 중인 김선우 작가와 알쓸인잡 화제의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 두 사람의 삶과 우주에 대한, 조금은 색다른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푸른 밤하늘과 도도새가 함께한 화가와 천문학자의 시공간을 만나보세요.




    김: 제 작업 자체가 가능성과 꿈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삶의 화두이기도 하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거든요. 그분이 했던 이야기 중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예술가는 결국 반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독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걸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저에게 작업이라는 것은 편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꾸준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 행위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이 좌절의 연속이지만 그걸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저에겐 일상의 루틴이에요.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반복되는 루틴이 회복탄력성을 주거든요. 아침 다섯 시에 작업실에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나왔다고 생각하면 아침부터 내가 작은 승리를 하나 거머쥐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 좌절의 연속인 삶에서. 그리고 전시장에 나갔을 때는 사람들이 주는 용기에서 힘을 얻죠. 이건 저를 사랑하게 된 계기 하고도 연결이 되는데..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업으로 삼아서 그게 나를 살아가게 할 때.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요즘 사회에서 사치스러운 일이잖아요. 굉장한 행운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그걸 통해서 결국 찾아냈고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도도새라는 매개를 통해서 같은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고 싶어요.

    심: 성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까요?

    김: 하지만 이전에 힘들었던 시기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였어요. 늘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지속할 힘이 되었죠.

    심: 꿈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가치니까요. 저는 사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작가님 그림을 보면 그린 사람의 행복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희망을 그리시게 되었나요? 내면의 절망을 그리는 작가들도 많잖아요.

    김: 제가 도도새를 그리기 이전의 작업은 사회비판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강렬한 작품도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교수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예술이란 것은 까만색으로라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됐어요. 내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찌르는 게 도움이 될까? 어두운 이야기더라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여행의 순간들


    심: 천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지구를 낯설게 보는 연습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는 일상에서도 같은 공간을 낯설게 보려고 노력해요. 지금 출근길에 보이는 저 표지판을 내가 읽을 수 없다고 상상하면 그것만으로 여행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있거든요. 낯선 풍경을 찾아 구글맵을 볼 때도 있는데 언젠가 구글맵에서 본 풍경이 아직도 기억나요. 석양이 질 때 찍힌 것인지 길 위로 기린들의 그림자가 길게 펼쳐져 있었거든요. 그 그림자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어요. 야생의 기린 떼일지 동물원의 기린일지 추측해보기도 하고, 기왕이면 동물원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제가 직접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입체적으로 상상되는 장면 중 하나예요.

    김: 저는 여행을 가면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보려고 애써요. 나만 볼 수 있고 나만 기억할 수 있는 장소를 보려 노력하고. 제가 여행에서 좋아하는 점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점이거든요. 제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서 생각을 환기할 수 있어서예요. 거기서 들어오는 감정의 변화나 여행지에서 느끼는 외로움마저도 영감이 되거든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반대되는 감정의 파도가 생각의 전환을 도와주는 것 같아서. 제게는 여행지에서 혼자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해요. 익숙했던 행위가 다른 장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행위가 되는 지점을 좋아합니다.





    나의 '아스트롤라베'


    김: 저의 아스트롤라베는 작업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항상 작가로 살아남고 싶다는 말을 해요. ‘살아남는다’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가 많잖아요. 잊혀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제가 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전시를 하는 게 목표예요.

    심: 일상을 유지하는 게 저의 목표이고 제가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가는 것. 할머니 천문학자로 늙어 죽는 것. 상을 받거나 큰 업적을 이루는 과학자가 되는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여기저기에 채용원서를 쓰고 있었거든요. 책을 내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어요. 천문학자라고 책을 내버렸는데 몇 년 뒤에 기업에서 코딩하고 있으면 얼마나 웃길까. (웃음) 기왕 이렇게 선언해버린 거, ‘훌륭한’까지는 아니더라도 멀쩡한 천문학자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매일 같은 풍경과 현실에 지칠 때면 천체어플을 열어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위치한 건물의 바닥, 천장, 벽 너머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별의 지도를 바라보길 몇 분. 피로한 눈을 감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다지곤 했었죠. 치열하게 자신의 궤도를 유지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내내 그때의 꿈들이 스쳐갔습니다. 대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심채경 박사의 서명 옆, 늘 한결같은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고요하고 맹렬한 우주 속 어딘가에서, 함께.’ 서로의 빛을 반사하는 게 별이란 사실은 이런 때를 위한 위안일까요. 6500만 년 전 사라진 공룡과 300년 전 멸종한 도도새, 40년 전 어머니도 모두 같은 별을 보았을 거라 생각하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외로움도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김선우 작가의 작품 속, 영원히 별을 쫓는 존재들처럼. 하나하나가 모두 위대한 홀로일 모든 도도와 별들에게 대담을 바칩니다.


    EDITOR 조희연 DESIGNER 김세윤

    WORLD SHIPPING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GO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