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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베이크

    꿈이 아닙니다, 작품입니다

    “말이 안 된다.”라는 관용어구가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를 벗어날 때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말이 되는 것들 앞에서 순종적입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것을 만났을 때는 어떤가요? 현실에 저항하고 세상을 뒤집는 초현실주의자의 미술세계를 소개합니다.

    메레 오펜하임, 〈모피 아침 식사 Fur Breakfast〉, 1936, 모피를 씌운 찻잔, 받침접시, 숟가락



    “말이 안 된다.”라는 관용어구가 있습니다. 어떤 현상, 상황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를 벗어날 때 사용합니다. 우리는 ‘말이 되는’ 것들 앞에서는 순종적입니다. 거부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말이 안 되는’것을 만났을 때는 어떤가요? 몇 가지 상황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재봉틀 위에 우산이 서 있다.’, ‘이 찻잔은 털로 만들어 졌다.’



    『초현실주의 혁명 La Révolution surréaliste』, 1924년 창간호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비를 막아야 할 우산이 왜 재봉틀 위에 있으며, 액체를 담을 찻잔을 털로 만들면 제 역할을 못 하지 않나?’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우리의 뇌는 점점 부풀어 오릅니다. 낯설고 이상한 상황에서 사고의 영역은 확장됩니다. 상상하게 되죠.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한 사람들이 바로 ‘초현실주의자’입니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 호안미로 전시 포스터 안 미로 이 페라 Joan Miró i Ferrà, NUITS DE LA FONDATION, 1967


    우리에게는 미술로 익숙한 ‘초현실주의’는 사실 다양한 예술적(미술, 문학) 운동으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의 삶의 방식이자 철학적 견해의 표현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초현실주의(surréalism)는 ‘리얼리즘을 초월한 진실’입니다. (sur는 프랑스어로 ‘-위에’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 초현실주의자에게 현실이란 논리적 사고에 의해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의 질서 잡힌 체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현실은 무의식에 의한 비논리적인 통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논리적 통찰이 ‘자동기술법(automatism)’ 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919부터 1924까지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가들에 의해 발행된 문학 잡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문학에서 시작되어 미술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1차 세계 대전의 대량 학살을 경험하면서 철저한 정신적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기계화된 첫 세계 대전이 지닌 특성인 파괴력을 경험한 이들은 현실을 초월한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죠. 앞서 말했듯, 이들은 자동기술법을 통한 작품 법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최대한 이성적인 사고를 배제하고 무의식의 가장 깊은 차원인 꿈과 환상을 창조성의 원천으로 하는 창작 방식입니다. 가장 먼저 시도된 방식은 기존의 언어 형식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아까 예시로 들은 ‘말이 된다’는 관용어의 유래를 추측해 보면, 우리는 ‘말’, 그러니까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 논리적이고 이해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의 이성적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초현실주의가 ‘문학’에서 시작된 이유입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내면의 이미지를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꿈의 연상 내용을 언어예술작품으로 옮겼습니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마송의 자동기술법 드로잉 André Masson, A Paul Éluard, 1924 © Galerie Natalie Seroussi


    이런 자동기술법의 무의식적 원칙은 미술에서도 스케치나, 그림의 내용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먼저, 스케치는 작가가 의식의 통제를 (의식적으로) 억제하며 무의식의 상태로 끌고 가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반사적으로 종이에 선을 그어 실루엣을 묘사했습니다.



    Max Ernst, <Celebes>, 1921 ©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20

    한편, 회화에서는 입체주의의 추상적 언어를 거부하고 다시 구상적 표현으로 돌아옵니다. 묘사보다는 그림의 내용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현실을 표현하면서 꿈과 무의식의 영역을 들여다보고 문화적 관습, 선입견에 방해받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을 보면 그림 속 이미지는 추측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셀베레스(Celebes)> 작품에서 코끼리로 추정되는 형태는 아프리카의 곡물 저장소의 형태를 따온 것이라 합니다. ‘이것은 왜 이런 모양이지?’, ‘이것들이 왜 같이 있지?’ 같은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림이죠. 마음에서 무언가를 상상해서 그렸다기보다, 그는 이미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미술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합니다. sur-réalism, 리얼리즘을 초월한 현실이죠.

    이준원 Blue Totems, 2022 ©print bakery


    지금까지도 초현실주의자가 제시한 ‘자동기술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창작을 도모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작가 이준원은 즉흥적으로 상상한 반추상적 형상을 자동기술법 페인팅을 이용해 그려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만의 존재와 에너지를 구축합니다. 유기적 생명체들, 선과 색이 모여 춤을 추듯 확장되는 이미지는 몽상적입니다. 근거 없이 그어지고 이어진 이미지들은 무의식의 세계를 연상하게 하죠. 덕분에 우리는 정답 없는 이미지 안에서 나만의 세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이준원 Inner Dance, 2022 ©print bakery




    하지만 모순이 있다면, 의식적으로 의식을 통제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부분이죠. 그런 이유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자동기술적 제작 방식의 시도뿐 아니라 다른 다양한 길을 탐방했습니다.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이들이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정신적 변화를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말이 되는’ 현실보다는, ‘말이 안 되는’ 무의식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제시한 것이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때로는 더 강력한 것 같습니다. 낯설게 바라본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장면을 선물해 주니까요.





    WRITER 전혜림  EDITOR 조희연  DESIGNER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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