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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형택의 'Fondness' : 있는 그대로의 순간들

    윤형택의 작품에 어려있는 감정들을 뭐라 부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사랑이나 행복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조금 아쉽기도 하죠. 깊은 마음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오지은과 감정이란 렌즈를 통해 사회를 비춰보는 김신식 연구자가 윤형택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애틋함에 대해 조명했습니다.

    윤형택, 두사람, acrylic on canvas, 90 X 73 cm, 2022


    당신을 있는 그대로 머무르게 만드는 순간들은 언제인가요? 내일의 걱정은 뒤로한 채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 나만의 장소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나를 잘 아는 사람의 곁에 앉아 온기를 느끼는 시간. 이때 우리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어 그곳에 존재합니다.

    윤형택의 그림 속 인물들은 그 순간을 담담하게 누립니다. 하루를 통과하며 누적된 긴장을 내려놓고선, 내가 좋아하는 시간 속에 몸담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선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죠.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그사이를 맴돌고 있는 따스한 감각들이 전이되는 듯합니다.

    화폭에 어려있는 감정들을 뭐라 부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사랑이나 행복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조금 아쉽기도 하죠. 깊은 마음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오지은과 감정이란 렌즈를 통해 사회를 비춰보는 김신식 연구자가 윤형택의 작품에 녹아있는 애틋함에 대해 조명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부유하던 감각들을 포착하고 해석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윤형택, Fondness 2207-01, acrylic on canvas, 117 X 157 cm, 2022


    당신은 책을 어디에서 어떤 표정으로 읽나요

    오지은 l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사람.


    당신은 영화를 어디에서 보길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영화관일까요. 커다란 화면, 커다란 소리, 한 세계가 시작되는 것을 함께 목격하고 2시간 후에 끝나는 것을 또 함께 목격하는 시간.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도 일어나지 않는 다른 관객을 보며 몰래 연대감을 느끼곤 하나요. 자기 전에 핸드폰 화면의 밝기를 줄이고 아껴뒀던 영화를 조금 보다가 잠이 드는 걸 좋아하나요. 아니면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돌려 품에 안고 거실 소파에 푹 잠겨서 보길 좋아하나요.

    당신은 음악을 어디에서 듣기를 좋아하나요. 모르는 길을 걸을 때 랜덤으로 나온 음악이, 한동안 잊고 살던 너무나 좋아하던 음악일 때, 그 반가움과 애정이 뒤섞인 작은 놀라움. 콘서트장에서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사운드 속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 순간은 어떤가요. 모르는 사람과 같은 타이밍에 지금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평소에는 내면 안 되는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는 순간은 또 어떤가요. 반대로 방 한구석 작은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방의 공기를 채우는 은밀한 시간을 좋아하나요. 친구와 새벽까지 이야기하던 어느 밤, 친구의 핸드폰에서 나오던 어떤 음악을 사랑하게 된 적이 있나요.

    영화와 음악과 그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를 묻는다면 당신은 많은 대답을 떠올리고 많은 상황을 얘기할 것입니다. 그걸 나눴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하는 당신의 표정은 어딘가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공기가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좌)윤형택,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는 사람, pen on paper, 17.5x12.5cm, 2022, (우)윤형택, 일상 - 밤, pen on paper, 21x14.8cm, 2022


    하지만 책이라면 어떨까요. 책과 당신은 어떨까요. 책을 손에 든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갈까요.

    제 생각에 당신은 책을 펴기 위해 ‘가장 안전한 장소’에 갈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많은 것을 내려놓고, 당신의 사회적인 표정, 관계, 당신이 카페에 앉아있을 때 쓰는 척추 근육의 힘까지 전부 풀어버려도 되는 곳. 가장 편한 곳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가장 편한 포즈로 책을 펴고, 당신은 세계와 만납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 같지만, 사실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세계여서, 그 세계는 곧 당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진행 중인 당신은 얼굴근육에 신경을 쓸 수 없습니다.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누구도 당신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때 당신의 표정은 어딘가 착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당신의 눈과 입, 팔과 다리. 마음에 닿은 구절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기도 합니다. 여러 번 다시 읽기도 합니다. 어떤 문장에 쿵 하고 마음이 떨어지는 순간엔 잠시 책을 닫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낙하는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깊게 가라앉을수록 당신은 자유로워집니다.

    책과 당신의 이 신비하고 고독한 시간을, 이 관계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누군가 책을 읽습니다. 위험한 바깥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만의 견고한 장소에서, 낡은 잠옷을 입고 십 년도 넘게 들었던 그 앨범과 함께 책을 읽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냐하면 책을 읽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니까요.



    윤형택, Woman in green, acrylic on canvas, 90 X 73 cm, 2022


    남다른 낯가림

    김신식 l 감정사회학 연구자,『다소 곤란한 감정』 등을 썼다.


    감정과 관련된 사회 문제를 살피다 보면, 가끔 근육이 없길 바라는 신체 부위를 상상한다. 바로 얼굴이다. 뒤센 미소와 팬암 미소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심리학자의 이름을 딴 뒤센 미소는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를 뜻한다. 우리는 가끔 흐뭇한 표정을 한 누군가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저건 ‘찐’이야!” 평한다. 팬암 미소는 억지스런 미소를 칭하는 용어다. 팬암이 항공사의 줄임말(Pan American World Airways)임을 감안할 때, 일의 특성상 때론 마음에 없는 미소를 지어야 하는 승무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한쪽을 진짜 미소로, 다른 한쪽을 억지 미소로 판단하도록 이끄는 요인은 무엇일까. 입가 근육과 눈가 근육이다. 가령 인간이 정말 기뻐서 미소를 지을 경우(뒤센 미소)입가 근육과 눈가 근육이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한데 꼭 즐겁지 않아도 미소가 나올 땐(팬암 미소) 눈가 근육은 잘 움직이지 않은 채 입가 근육만 움직인단다.

    지면을 빌려 교양심리학 수업을 열려는 건 아니다. 윤형택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얼굴 근육을 언급해보았다. 작가가 표현한 사람의 얼굴엔 근육이 생생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근육이 부재해 보인다고 할까. 덕분에 그림 속 누군가는 슬며시 웃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심드렁해 보이기도 하나, 그런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두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고 싶지 않아진다. 저 미소에 감춰진 이면은 뭘까, 뾰로통해 보이는 이의 얼굴에 담긴 속마음은 어떨까 하고 말이다.



    윤형택, Hug, acrylic on canvas, 73 X 60 cm, 2022


    고로 윤형택은 근육이 부재한 얼굴을 통해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그 감정에 숨어 있으리라 짐작하고픈 감정 사이의 거리를 없앤다. 그로 인해 표정과 감정의 관계가 서로 왜곡되지 않는다. 아울러 근육이 부재한 얼굴과 함께 선·단·면으로 단순하게 시각화된 얼굴 및 상체는 외려 그림에서 전해지는 감정을 단면화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그림 속 아무개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즉 조각상을 접하듯 그림 속 캐릭터들의 머리는 굴곡지고 눈·코·입·어깨·등엔 다양한 각이 존재하는데, 거기서 묻어나오는 감정을 전달받는 난 감정이 마모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때 작가의 화풍으로 알려진 옆모습에 대한 강조는 일종의 낯가림처럼 보인다. 한데 윤형택의 그림 속 낯가림은 처음 보는 사람과의 서툴고 어색한 관계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낯가림은 낯의 원래 뜻에 기인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러했다. 눈, 코, 입 따위가 있는 얼굴의 바닥. 낯의 사전적 의미가 왠지 미술적으로 다가왔다. 바닥은 납작하다. 윤형택 월드의 인물도 납작하게 생겼다. 익히 알다시피 현대미술사에서 납작한 형태는 표면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윤형택, Kiss, acrylic on canvas, 60 X 73 cm, 2022


    이런 맥락에서 윤형택은 오롯이 표정의 표면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그는 두 사람이 각자의 낯에 서린 표정을 보며 감정이 함부로 곡해될지 모를 순간을 가려버리는 길을 택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으며 그이의 얼굴을 보지 않음으로써.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그의 표정을 다 보지 않음으로써. 이는 결코 무심함과 냉랭함에 복속된 행위가 아니다. 작가가 오랫동안 수많은 오해와 이해를 감당해온 인간의 하루하루를 헤아린 채 얻은 통찰에서 나온 낯가림이다. 이처럼 윤형택의 작업은 우리에게 남다른 낯가림을 선사한다.

    그런 낯가림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지도. 당신은 누군가의 표정에서 감정을 추출하는 시도에 너무 오랫동안 시달리지 않았나요? 누군가의 표정을 표정으로만 볼 때, 그 표정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나날을 간직해 본 적 있나요? 전시의 제목이 왜 애틋함fondness인지 조금 알 듯하다.



    윤형택, 뒷모습, acrylic on canvas, 90 X 73 cm, 2022


    EDITOR 오은재 DESIGNER 이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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