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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미술 여행 Ep.1 베를리너가 되어버린 순간들

    금요일 밤이면 한 손에 맥주병을 쥔 채 지하철에 타고, 버스에서 만난 낯선 이의 강아지에게 무릎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사는 이 자유롭고도 친절한 도시에 매력을 느낀 건 저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감각이 깊고 예민한 예술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든 지 꽤 됐거든요. 로마, 파리, 뉴욕을 거쳐 이제는 베를린으로 넘어온 현대 미술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

    Holzmarkt 25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김은영

    베를린은 독일을 상징하는 도시이지만, 또 다른 하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독립적이기도 한 도시입니다. 길 가다 마주치는 네 명 중 한 명은 이주민이고, 때론 독일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리거든요. 사람들이 까칠하고 음식이 맛없다는 편견도 이곳에선 다른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Hasenheide Volkspark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좌) 앵무새를 등에 엎고 지하철에 탄 풍경 (우) © 김은영

    금요일 밤이면 한 손에 맥주병을 쥔 채 지하철에 타고, 버스에서 만난 낯선 이의 강아지에게 무릎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사는 이 자유롭고도 친절한 도시에 매력을 느낀 건 저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감각이 깊고 예민한 예술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든 지 꽤 됐거든요. 로마, 파리, 뉴욕을 거쳐 이제는 베를린으로 넘어온 현대 미술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



    Boros Collection, Berlin ©NOSHE (좌) Boros Collection의 한 정문을 막고 있는 돌 ©김은영 (우)

    1. Boros Collection


    Boros Collection은 얼핏 보면 전혀 미술관 같지 않은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햇빛이 드는 큰 창도 없고, 간판도 없어서 구글 맵을 켜고 찾아가도 미술관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지요. 정문은 커다란 돌로 막혀있고, 벽에는 뜬금없이 바나나가 그려져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건물은 ‘바나나 벙커’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오묘한 미술관은 뛰어난 컬렉션으로도 유명하지만, 건물 자체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숨어있던 공간이기도 하고 이후에는 테크노 클럽으로 사용되기도 했거든요. 이 공간의 매력을 알아본 샤넬은 지난 2월 제77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개막을 기념하며 만찬 장소로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순서대로 Boros Foundation의 디렉터 Juliet Kothe와 Karen, Christian Boros 부부 © Max von Gumppenberg

    Christian Boros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플리마켓을 다니며 작은 물건들을 사 모으는 것에 익숙했다고 해요. 그리고 그가 성인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준 돈으로 처음 작품을 사면서 본격적으로 아트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그의 미적 감각과 선구안으로 현대 가장 유명한 사진작가인 볼프강 틸만스의 작품,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안네 임 호프의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Bunny Rogers의 작품 (좌), Anna Uddenberg의 작품 (우) © NOSHE

    Boros 부부는 벙커였던 이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어 1990년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국제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넓고 높은 공간을 여유롭게 그리는 배치는 작품에 더 집중하게 하고, 도슨트의 말에 귀 기울이게도 하며 2시간의 투어를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진두지휘해요.


    베를린의 여러 미술관 중에서도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은 사진 촬영도 할 수 없고, 오직 가이드를 따라가는 길로만 투어가 가능합니다. 몇 달 전부터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꼭 사전 예약 후 방문하세요!



    Schinkel Pavilion 외부 전경 © Thorsten Klapsch

    2. Schinkel Pavilion


    Schinkel Pavilion은 Boros Collection에서 만난 도슨트가 추천해 준 갤러리 중 하나입니다. 투어가 끝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면 여기도 꼭 가봐”라며 갤러리들을 추천해 주었거든요. 도슨트의 스타일이 ‘나 베를리너야’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기에 그가 추천해 준 곳들을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Schinkel Pavilion을 향해 가는 길과 그 앞에 도착했을 때, SNS 계정 속 소개된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외관에 놀랐습니다. 분명 미래지향적이고 공학적인 작품들을 다루는 갤러리였는데, 입구는 마치 옛 독일의 귀족들이 살법한 정원 같았거든요. 건물 자체도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시대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고전 작품들이 금속 액자에 걸려있을 법한 느낌이랄까요?



    'Human is' 전시 전경 © Schinkel Pavilion

    차분하게 환하던 외부와 달리 전시장 안은 빛줄기 하나 없이 어두웠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습니다. 툭툭 놓여 있는 조각들과 미디어 아트들은 건물과 대조를 이루어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방문했을 당시 Philip K. Dick의 단편 소설과 동명인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인간과 과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VR과 미디어 아트, 설치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고 작품 간의 연계성을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잊지 말고 꼭 방문해 보세요!




    Mitte 지역을 거닐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Höfe (좌), Sophie-Gips-Höfe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Thomas Locher의 작품 (우) © 김은영

    3. Sammlung Hoffman


    Sammlung Hoffman은 베를린의 Mitte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입니다. 서울의 한남동, 성수동처럼 유명 브랜드 샵부터 빈티지 샵, 크고 작은 갤러리들과 브런치 가게들로 가득해요. 이 지역을 걷다보면 안뜰이라는 뜻의 ‘Höfe’라고 불리는 건축 양식을 쉽게 만나게 되는데,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특별한 공간으로 입장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지요.


    Sammlung Hoffman 갤러리는 이 Höfe를 지나 한 건물의 벽면을 가득 채운 Thomas Locher의 작품을 발견하면 마주하게 됩니다. 갤러리의 주인 Erika Hoffmann은 이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있어요.



    전시 전경 © Sammlung Hoffmann

    Erika Hoffmann은 1960년대부터 5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그의 남편과 함께 그들의 컬렉션이 어떤 주제나 방향으로 전개될지 정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뚜렷한 취향과 오랜 연구 덕분에 대부분의 작품들은 갤러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당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관례에 도전하는 작품들이 많아요. 이를테면 수십억을 호가하는 장 미셸 바스키아 작품부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신진 작가 작품들까지 다양하지요.



    Erika Hoffmann의 모습 © Sammlung Hoffmann

    제가 방문했을 당시 우연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Erika를 볼 수 있었어요. 건물의 꼭대기 층에 다다라서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마주쳤을 때 용기를 내어 짧은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랜 시간 본인이 사랑하는 것들을 쫓으며 탐구해 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온화한 카리스마가 그녀에게서 느껴졌어요.


    SNS 계정도, 특별한 예약시스템도 없는 이곳은 일주일에 단 하루 토요일에만 사람들을 위해 컬렉션을 공개합니다. 베를린에 가게 된다면 토요일은 이곳을 위해 비워두는 건 어떨까요?


    Ep2.에서 계속


    WRITER 김은영  EDITOR 송효정  DESIGNER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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