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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무이한 시선에 대한 애정, 사진작가 이상 인터뷰

    이상에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란, 다른 이에게 탐색되지 않은 ‘나만의 순간’입니다. 아무에게도 간직되지 않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죠. 시시각각 변하는 물 위의 반영을 포착하는 작업으로, 예술의 순수한 유일무이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는 탐구자이자 도전자인 이상 작가를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사진을 찍나요?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만났을 때.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내 눈앞의 씬(scene)을 박제하고 싶은 욕망이 셔터를 누르는 행위의 시작일 테죠. 이상은 여행에서 만난 매력적인 순간을 날렵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것으로 사진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점차 회화성이 짙은 독특한 작업을 선보이며, 그만의 매력적인 시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상에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란, 다른 이에게 탐색되지 않은 ‘나만의 순간’입니다. 아무에게도 간직되지 않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죠. 시시각각 변하는 물 위의 반영을 포착하는 작업으로, 예술의 순수한 유일무이성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는 탐구자이자 도전자인 이상 작가를 만났습니다.



    Leopard #010, Pigment print on paper, Chobe, Botswana, 2013


    진혜민(이하 진): 여행지의 사진들을 주로 선보이고 계시죠. 굉장히 많은 곳을 다니신 것 같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이상(이하 이): 새로운 일을 시작 한 후 휴가를 가지 못하다가 일을 시작하고 4년 만에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가게 되는 여행이다 보니 특별하고 멋진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마침 아프리카의 외교관으로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지인이 있는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가지 못할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아프리카행을 결정했죠. 친구가 짐바브웨에 있었거든요. 그때는 작품 활동을 할 때는 아니었는데, 천신만고 끝에 레오파드 사진을 찍은 이후, 사진이 단순히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닌, 작가와 피사체의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을 담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며 좀 더 진지하게 사진을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장면을 찍는 것에서 벗어나, 생각을 담고 더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며 새로운 고민들이 생겨나더라고요.

    진: 피드백이 좋으면 무엇이든 더 애정을 쏟게 되죠. 사진작가를 하게 된 더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이: 방금 말씀드린, 짐바브웨에서 찍은 레오파드 작품 덕분에, 2016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어요. 제 사진들을 보고 인상 깊었다며 유중 갤러리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거든요. 감사하게도 첫 전시 반응이 좋았죠. 소장해 주신 분들도 많았고요. 그때의 좋은 평가들에 힘입어 계속 새로운 작업을 해나갈 동력을 얻었습니다.



    이상 작가의 첫 개인전


    진: 첫 전시에서 특히 기억나는 반응들은 있을까요?
    이: 첫 전시여서 어떤 주제를 갖고 선보이기보다는 풍경, 동물, 인물 등 주변을 찍은 모든 것을 선보였는데 다양한 것들을 보여드리다 보니, 반응이 한 가지로 나타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사진의 감도를 좋아해 주셨습니다. 액자 표구를 많이 해놓아서 이거 나중에 어떻게 다 보관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남았어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소장해 주셔서 행복한 전시였죠. 전시의 결과가 좋았던 덕에 감사하게도 이 이후로 여러 차례 유중갤러리에서 전시를 지속해서 선보였습니다.



    이상 작가의 프린트베이커리 한남점 개인전 전경


    진: 계획하에 일어나는 일이 아닌, 자연스럽게 흐름대로 선보이고, 좋은 반응을 얻고, 그것에 힘을 얻어 그 분야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요?
    이: 그러게요. 프린트베이커리와의 인연도 신기했어요. 새로운 지역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어서 신사동 쪽에 일정을 잡고 포스터도 모두 나온 상태였거든요. 그때 코로나로 인하여 전시가 갑자기 무산이 되어서 낙담했는데, 마침 소개를 받게 되어 프린트베이커리 한남점에서 무사히 전시를 오픈할 수 있게 되었죠. 물 흐르듯 작업을 선보이는 기회가 이어진 것 같아요.

    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전에도 꾸준히 작업해오시다가 정말 운명처럼, 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거잖아요.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인데, 원래부터 순간의 포착, 혹은 기록에 대한 애착이 있으셨던 걸까요?
    이: 저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를 식욕에 비교하곤 합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은 게 자연스럽게 떠오르듯, 길을 걸으며 어떤 장면을 보았을 때, 포착하여 찍고 싶다는 것이 딱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이 순간은 찍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



    Unreal Reality #001, Pigment print on paper (Diasec), 2018


    진: 그런데 최근 작품은 점점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감의 발현같이 느껴집니다. 점점 더 추상적으로 진행되면서, 형태가 해체되고 있어요.
    이: 사진이라는 매체가 예술의 영역이지만 회화 작품과는 다르게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게 점점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새로운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점점 오지에 가거나, 사람들이 보통 활동하지 않는 짙은 새벽녘 시간을 탐색하곤 하죠. 그럼에도 아름다운 순간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전시를 지속하다 보니 사진을 갖고 유일무이한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직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찾기에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있어요. 여행자로서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은 아무리 해도 매일을 영위하는 현지 사람보다 좋은 순간을 잡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찍을 수 없는 장면을 찍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졌습니다.

    진: 그렇게 탄생한 게 일렁이는 물결 위의 풍경을 찍은 반영(reflection) 시리즈인가요?
    이: 맞아요. 반영이 있는 사진을 많이 찍던 시기가 있었어요. 아무도 담지 않는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물에 비친 잔영을 보고 있자니, 계속 움직이는 이 물결이야말로 매 순간이 변하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물에 비친 이미지는 그 순간 말고는 계속 바뀌니까요. 반영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베네치아에 갔어요. 본섬에서 배를 타고 한 번 더 들어가는 부라노 섬에서 사진을 잔뜩 찍어왔죠.
    *반영(reflection): (거울 등에 비친) 상[모습]



    Simulacrum #001, Pigment print and Acrylic on Canvas, 2020


    진: 이때부터 작업이, 회화적인 성격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사진이 아니라 유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 이 반영 시리즈 작업을 보고 ‘유화 같다.’는 피드백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오히려 실제로 더 회화처럼 구현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렸을 적 화가인 어머니 친구분 화실을 따라다니면서 배웠던 붓질이 떠올랐어요. 유화가 터치감을 줄 수 있는 소재잖아요? 사진 위에 새로운 색을 칠하는 것보다는, 질감 있는 화면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투명한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어요. 이렇게 시도한 작품 두 점을 프린트베이커리 전시에서 선보였는데,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물결이 일렁이듯 입체감이 느껴져서 제가 생각한, 유일무이한 풍경으로 한 발자국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진: 이 모든 게 유일무이한 피사체를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보이는데, ‘나만이 찍을 수 있는, 혹은 표현할 수 있는’것에 대해 고민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 어렸을 때부터 ‘나만’, ‘먼저’ 갖고 발견할 수 있는 물건들에 집착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전자제품이 특히 그랬고요. 워크맨 자체가 흔치 않을 때였는데 신형이 나오면 무조건 먼저 산다던가. ‘나만 갖고 있는’ 유일성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Golden Field #23001v, Pigment print and Acrylic on Canvas, 2023


    진: 최근 선보인 작품은 완벽한 ‘추상 회화’같은 느낌이에요.
    이: 사실 이 작품의 바탕은 배추밭인데요, 처음에는 이것을 찍으려던 건 아니었어요. 평창에 안반데기라고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 있습니다. 은하수 찍으러 많이 가는 곳이에요. 보통 겨울에 가다 보니, 배추가 없을 때 방문하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밭과 다르게 경사가 있고 경사에 맞추어 격자무늬가 불규칙하게 있는 점에 매료되었어요. 이곳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풍경의 조각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에 배추가 있을 때 다시 와서 찍게 된 작품입니다. 색을 칠하고, 입체감을 칠하면서 완성했어요.

    진: ‘남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이 숨어져 있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눈빛이 정말 열정에 불타시는데요!
    이: 그럴 때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발견하는 눈이 있다고 믿고 싶고요.

    진: 원래 치과 의사이신 만큼, 이과감성이 가득하실 줄 알았는데, 회화 터치나 색을 보는 영역은 완벽하게 감성적인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감성의 밸런스가 잘 맞으시는 것 같아요.
    이: 치과가 의학이지만, 대학교 때는 치아를 깎고 그리는 수업도 있어요. ‘The Art and Science of Dentistry’ 라는 과목명도 있고요. 의학 안에서만큼은 예술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쓰는 분야예요.

    진: 형태적인 면이야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색감을 보는 시선도, 특히 최근 배추밭 작품을 보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거든요.
    이: 아무래도, 어렸을 적 당시 실제 전업 작가 활동을 하시는 화가 분과 그림을 그렸었다 보니, 그때의 경험이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요?

    진: 미술 외에 좋아하는 예술 영역이 있나요?
    이: 학교 다닐 때는 오케스트라 단원이었습니다. 사진부랑 미술부가 있었는데도 그때는 왜인지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네요. (진: 잘 맞으셨나요?) 이: 네, 재밌게 했습니다. 바이올린을 맡았었어요.



    Starry Night #002, Pigment print on paper (Diasec),Tasmania, Australia, 2016


    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탐험가같이 삶을 이끄시는 것 같습니다. 도전적인 성향이 강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지도, 아프리카나 쿠바 같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많이 찾아다니신 것 같고요.
    이: 사실 제 자신은 안전제일주의자인데요, 아프리카 여행이 큰 계기가 되었어요. 그전에는 대도시 말고는 갈 생각을 못 했는데, 한번 다녀오니 큰 문제나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렇게 다녀온 곳이 호주 남쪽의 섬인 ‘태즈메이니아’예요. 크기가 남한의 3/4라고 해요. 우리는 캐나다나 아이슬란드 같은 북쪽에서만 오로라를 찾는데, 사실 남쪽에도 남극 오로라가 있거든요. 태즈메이니아가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다녀왔죠.

    진: 북의 오로라와 다르게 보이려나요? 신기하네요.
    이: 남들이 안 찍는 오로라를 찍어보겠다고 갔는데 결국은 못 봤어요. 북쪽은 육지로 북극까지 갈 수 있지만 남쪽의 극 지점은 바다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제가 갈 수 있는 최남단에서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낮더라고요. 동물이랑 별 사진만 한가득 찍어왔습니다.

    진: 아쉬우셨겠어요. 오로라를 위한 다음 계획은 있나요?
    이: 바로 내일, 아이슬란드로 출발합니다. 제대로 된 오로라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요.

    진: 오로라 외에 앞으로 꼭 찍고 싶은 것이 있나요? 혹은 앞으로 작가로서 계획이 있다면?
    이: 지난 전시에서 보여드렸던 반영 사진 위에 덧칠 하는 작업을 계속 할 것 같아요. 양배추밭도 좋고 다른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추상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자연물을 찍어서 투명 매질을 칠하는 작업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추가로 미디어 아트 쪽으로도 좀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The portal to the other dimension #003, Iceland, 2023


    사진에 관한 한 한없이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이상 작가의 다음 행보는 아이슬란드의 풍경일 듯싶습니다. 그곳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않았던’ 유일의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신기루 같은 새로운 순간을 소개해 줄 테죠. 우리가 놓쳤던 세상의 많은 틈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과 회화의 경계에서 매력적인 울림으로 조율하는 그의 새로운 작품을 계속해서 기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는 발견했는지, 여러가지 궁금증을 안은 채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EDITOR 진혜민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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