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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간의 재해석, 엄은솔 X 김지영 인터뷰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설화가 필요합니다. 우주와 이야기,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존재하였을까요? 이야기를 구성하는 필수요소 ‘인물, 사건, 배경’. 스페이스사직에서 공간을 창조하는 김지영 작가와 인물을 그려내는 엄은솔 작가가 만났습니다. 실재하는 지역과 물체의 기억을 활용하는 김지영 작가의 자연과 환상의 경계를 떠도는 엄은솔 작가의 배우들이 펼쳐 보이는 특별한 시공간, 2인전 ≪ ≫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당신에겐 시간의 차원에 빛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 Jonas Mekas



    조희연(이하 조): 두 분이 전시를 함께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서로의 작업에 동기부여가 될 때도 있으실까요?


    김지영(이하 김): 은솔 작가와는 독일에서 같은 학교에서 같은 시기에 공부했고 둘이 함께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하면서 전시를 기약했었습니다. 독일 예술 학교에서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큰 규모의 전시와 축제를 하는데, 그곳에서 엄은솔 작가와 호떡을 판 돈으로 이탈리아에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며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은솔 작가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엄은솔(이하 엄): 저도 독일에서 함께 호떡을 팔았던 추억이 종종 생각납니다. (웃음) 좋은 전시들을 따라 기차나 버스, 비행기를 타고 유럽 곳곳을 누비며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지영 작가와는 독일 유학생활 시절부터 각별한 관계였어요. 서로 다른 작업을 하는 우리가 한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면 어떻게 어우러지며 다채로워질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로 함께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 근래에는 입체적인 자연물과 건축물 위에 조각하는 방식으로 풍경을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엄은솔 작가가 그린 실내 공간 속 인물들은 바깥 세상을 본 적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은솔 작가의 인물화 곁에 실제 자연의 조각을 담은 제 작업을 걸어두곤 했습니다. 공간을 만드는 저와 공간 속 인물을 그리는 은솔 작가의 작업이 함께 놓이면 낯설지만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이번 전시로 그 그림이 현실화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엄: 최근 작업에서부터 작품 속 배경을 실내에서 실외로 확장시키며 자연을 등장시키기 시작했는데, 평소 지영 작가가 작업에 자연을 적용시키는 방식을 지켜보며 저도 자연에 새로운 애정을 갖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조: 엄은솔 작가님의 직접 제작하신 화판들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스케치와 페인팅에 들어가기 전, 캔버스에 대한 준비과정 자체가 메인 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지금의 작업 방식에 이르기까지 어떤 스토리와 실험이 있었을까요?

    엄: 독일에서 작업할 때는 캔버스 틀을 일일이 조합하고 짜는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한국에 오니 판매하는 캔버스들의 비율이 늘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리는 인물화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던 차라 길이와 각도가 일정하지 않은 각재를 주문하여 비정형 캔버스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무작위로 사다리꼴 형태의 캔버스들을 짠 뒤 어울리는 인물을 그려 넣곤 했는데요. 이제는 인물 혹은 장면에 맞는 캔버스를 모양에 맞춰 제작한 뒤 그려 넣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그림 속 인물들과 낯선 형태의 캔버스가 어울린다 생각하여 작년부터 재밌게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디피 하기 굉장히 까다롭다는 점은 감수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애를 좀 먹었어요.

    조: 이번 전시에 대한 작가노트에서 '꿈의 시선'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작가님의 작품은 꿈과 현실 사이에 칼을 꽂았을 때 새어나온 빛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에서 영감을 받으시는지, 특별히 꿈을 기록하는 방법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엄: 꿈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이미지가 강렬한 꿈들은 일어나서 글로 기록해두거나 곧장 스케치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꿈은 뇌의 영화관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던 뇌의 기록을 훔쳐보는 기분이라 늘 재밌어요. 꿈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인 것 같고, 상상이나 환상인 것 같기도 한 장면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솔직하고 직관적인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된 것처럼 꿈의 이야기를 각색하기도 하고 현실과 상상 그리고 환상의 경계에 있는 상념들을 이야기처럼 만들기도 합니다. 작품 속 디테일한 이야기는 작가인 저 밖에 알 수 없거나 혹은 저도 모릅니다. 보는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작품을 즐겨 주시면 됩니다.




    조: 작가님의 작품은 거울, 창문 등 대상이 반영되어 부차적인 프레임을 형성하는 구도와 물과 불의 그림자 등 조명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영화적인 연출이 연상되곤 하는데요. 작품을 구상하실 때 영화의 시놉시스처럼 인물에 대한 내러티브가 구체화되어 있을까요?

    엄: 어느정도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이야기가 선행하고 그 중 한 장면을 포착해서 담아내는 것 또한 맞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진짜 이야기는 저 밖에 알 수 없거나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웃음) 제가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그림에서 영화적 연출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초기엔 영화 스틸컷으로 드로잉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 작가님 작업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어떤 가치관으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엄: 처음엔 오직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제 작품으로 위로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제 그림을 찾아주고 또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니 이전과는 다른 사명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가 세상에 온 이유에 대해 고민하던 중 한 지인이 ‘언니의 그림을 보면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선물 받는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 순간 그림 그리는 이유가 어느 정도 명확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떠한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궁금해하며, 아프거나 혹은 위로 받을 수도 있는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 같습니다.




    조: 김지영 작가님께서는 설치 작품을 기획하기 앞서 짧은 글이나 소설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글을 함께 전시하거나 다른 형태로 아카이빙할 생각이 있으실지도 궁금합니다.

    김: 설치미술 자체가 관람객에게 친절한 방식은 아니기에 아직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몇 년 간 작업을 기획하며 쓸 짧은 글과 소설을 엮어 시나리오를 쓸 생각입니다. 공간화한 구조로 스튜디오로 만들고 라스폰트리에의 영화 <도그빌> 같은 영상을 제작하고 싶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인프라와 생활 습관 등 공동체 속 개인의 다양성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다루기 때문에 영상 작업 이후 설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분들이 더 많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조: 작가노트에 ‘생존’과 ‘진화’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식물 중에서도 이번 작업에 특별히 영향을 준 특정한 성질이 있을까요?

    김: 생존과 진화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물에도 적용되어 제 작업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고, 이것에 대한 흥미는 ‘잡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잡초는 보도블록, 건물, 공터 등 어디서나 자신이 위치한 곳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해 시멘트 구멍으로 몸을 폭발시켜 뚫고 나옵니다. 시멘트 속 자리 잡은 뿌리를 뽑을 수 없게함으로써 잡초는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땅에서 나올 타이밍이 아니면 7년 가까이 싹을 틔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잡초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생존을 위한 진화'라는 테제로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조: 주변에서 반복해서 보이는 형상과 구조에서 조형적인 영감을 받으셨다는 인터뷰를 보았는데요. 가장 최근에 가장 영감이 된 상징적인 오브제가 있을까요?

    김: 이번 전시를 통해 <따개비 조각> 시리즈를 시작하였습니다. 따개비는 바닷속에서 부유하다가 적당한 곳에 붙어 고착 생활을 하는 생명체로 원래는 게와 친척인 갑각류인데 바위에 붙어 살면서 조개류와 비슷한 모습으로 수렴 진화하였습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모하는 저의 <따개비 조각> 또한 전시장 이곳저곳에 뻗어 나온 건축 줄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또 다른 공간을 통해 진화를 거듭할 예정입니다.




    조: 여러 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가 작업 활동의 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장소를 기록하고 작업과 연계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김: 보통 주거지와 관광지를 걸으면서 그 지역에 정착한, 혹은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수집합니다.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건축 환경과 구조 안에서 다양한 요소와 특징을 발견하고 과거와의 접점과 연속성을 탐구하여 설치 작업으로 나타냅니다. 이러한 작업은 제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해가는 과정이자 장소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조: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감과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 이번 전시로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엄은솔 작가와 함께할 수 있었고 앞으로 진행할 다양한 프로젝트의 신작 내용을 오브제로 제작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전시를 즐겨주시길 바라며 프린트베이커리의 아끼지 않는 전시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엄은솔 작가와의 2인전 이후론 공간 불모지에서 작가 4인과 함께하는 그룹전과 온수공간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전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제목이나 이름 등을 나타낼 때 쓰는 문장부호 겹화살괄호, ≪ ≫. 엄은솔의 인물과 김지영의 배경이 관객이라는 ‘사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레임과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두 작가의 세계를 목격하며 당신만의 타이틀을 사유해보세요. 김지영, 엄은솔 작가의 2인전 ≪ ≫은 스페이스사직에서 12월 29일까지 진행됩니다.




    기간 | 2023.10.14(토) - 12.29(금)
    장소 | 스페이스 사직(사직동 181-3)
    시간 l 10AM-6:30PM(일,월,공휴일 휴무)
    문의 l 0507-1462-8265




    EDITOR 조희연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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