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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 코펜하겐 가구여행

    덴마크 디자인은 주의깊게 관찰해야만 인지할 수 있는 디테일이 모여 하나의 위대한 미학 세계를 구축합니다. 사용자의 태도와 행위, 나아가 삶의 모든 요소가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습니다. 사람이 담긴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다정함.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인 가구와 가구로 삶을 말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 코펜하겐에서의 가구여행을 소개합니다.

    코펜하겐, 덴마크 2023 ©전혜림

    여러분은 타지에 머물 때, 그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시민 의식 수준, 날씨에 따른 도시의 풍경, 친절 또는 불친절한 현지인과의 경험, 거리를 채우는 건물의 모습, 번번이 실패하는 또는 성공하는 식사 등… 수많은 요소가 그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고, 사람마다 다 다른 부분에서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겠죠. 어쩌면 여행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이번 저의 코펜하겐 여행이 굉장히 의외의 부분에서 저를 감동을 줬기 때문입니다. 제 여행의 메인은 주로 미술관, 건축물과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공간 경험, 로컬과의 우연한 대화로 도시의 인상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구 디자인’으로 코펜하겐을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괜히 덴마크가 가구의 나라가 아니더군요.


    코펜하겐, 덴마크 2023 ©전혜림

    꼭 가구를 주의 깊게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덴마크의 유명 가구를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신기한게 독립된 사물, 가구가 아니라 ‘사용’되고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보니 달리 보였습니다.


    뢰도브르 도서관(Rødovre bibliotek) ©전혜림


    1.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뢰도브르 도서관(Rødovre bibliotek)

    우리에게 가구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아르네 야콥센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건축가입니다. 그가 설계하여 1969년 완공된 뢰도브르 도서관은 덴마크 코펜하겐 서쪽 교외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서관의 구조적 핵심은 바깥으로 난 창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보면 낮고 평평한 직사각형 단층 건물이 짙은 회녹색 돌이 켜켜이 쌓여있을 뿐입니다.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들여다볼 구멍 하나 없죠.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반전이 펼쳐집니다. 내부에 커다란 중정을 곳곳에 두고 정원을 잘 꾸며 두어서 마치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라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아마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는 책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겠죠. 또한, 덕분에 외부의 산만함은 줄이고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는 느낌을 살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뢰도브르 도서관(Rødovre bibliotek) ©전혜림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위대한 건축가들이 늘 그렇듯 건물 설계뿐만 아니라 실내 디자인까지 모두 야콥센이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도서관 곳곳에서 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모든 가구를 야콥센이 디자인했고, 심지어 문고리마저 부드럽게 잡고 열리도록 만든 세심한 디자인과 설계의 결과입니다. 집요할 정도로 곳곳에 적용되어 있는 기하학과 비율의 원리는 방문자로 하여금 매우 자연스럽게 야콥센만의 질서와 미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공간의 위치와 크기, 출입구와 창문의 배열, 심지어는 책 선반의 위치까지 뢰도르브 도서관의 모든 것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 디자인 되었죠.

    호텔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그체어는 로비 공간에, 어린이 도서관에는 부모와 함께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낮은 series 3300 소파를, 또 어린이용 개미의자까지! 공간, 용도에 맞게 놓인 가구를 체험하며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잘 버무려진 아르네 야콥센의 디자인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핀율 하우스 ©전혜림


    2. 핀율 하우스

    덴마크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하는 집과 함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인테리어도 함께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며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독일 점령 동안, 핀 율은 이곳 핀 율 하우스에서 자신의 집을 설계 및 장식했습니다. 그가 30살이었던 1942년에 완공되었고 생을 마감한 1989년까지 이곳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사후 수년 동안 핀 율의 파트너인 한네 빌헬름 한센(Hanne Wilhelm Hansen)에 의해 관리되다가 2008년 개인의 기부 덕분에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핀율 하우스 ©전혜림


    그의 가구는 여러 예술가의 공예품 그리고 미술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주로 덴마크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한 그의 공간을 살피다 보면 집의 모든 요소가 서로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은근한 공통점을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실 캐비넷에 쓰인 파스텔 컬러들이 안방 침대에도 사용된다거나, 벽의 위아래로 포인트가 되는 얇은 원색 선이 방마다 변주된 형태로 동일한 위치에 존재한다거나하는 디자인 코드에서 말이죠.


    (좌) The Chieftain Chair. 1949 (우) Chair, 1953 ©전혜림


    핀 율 가구 디자인에는 은은한 곡선이 스며있습니다. 크게 휘어지는 선이 아니라 우리 몸이 가진 완만한 곡선을 닮은 선입니다. 핀 율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진 The Chieftain Chair는 1949년 코펜하겐 케비넷메이커스 길드 전시회(Copenhagen Cabinetmakers’ Guild Exhibition)를 위해 디자인된 의자입니다. 그가 디자인한 다른 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좌석, 팔걸이, 등 부분은 의자를 지지하는 구조, 프레임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의자의 독특한 형태는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문화 토착 예술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가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죠. 지금은 당연한 개념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전통적인 프레임 방식을 벗어난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예술작품인 동시에 편안함까지 놓치지 않죠. 화려하지도 않고요.


    Paustian showroom, ©전혜림


    3. 덴마크 디자인 편집샵, 퍼스티안 (Paustian)

    요즘 가장 핫한 편집샵인 퍼스티안은 가격대 높은 가구를 전시하지만,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중심부 쇼핑 지역인 Strøget에 위치한 이 스토어는 1869년까지 사용되었던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건물을 개조해서 꾸며둔 곳입니다. 과거의 흔적이 느껴지는 기둥, 천장과 현대 가구 디자인이 오묘하게 섞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Paustian showroom, 루이스 폴센 파트에서 발견한 폴 헤닝센 PH 시리즈 ©전혜림


    1900년대 등장해서 디자인 업계를 뒤흔든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가구는 동시대 여러 브랜드에 의해 대량생산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라 하면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일 것입니다. 퍼스티안 쇼룸에서도 루이스 폴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브랜드 미학의 핵심에는 폴 헤닝센이 빠질 수 없죠. 전기 조명이 발명되기 전인 1874년부터 존재해온 브랜드인 루이스 폴센은 1920년대 초반 디자이너 폴 헤닝센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가 1925년 파리 국제 대회에서 처음 선보인 PH램프는 오늘날 루이스 폴센을 대표하는 클래식 라인입니다. 


    폴 헤닝센 가구전 'PH Funiture' 현장 ©프린트베이커리


    폴 헤닝센은 잘 설계되고, 기능적이며,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환경은 모든 개인의 권리라고 믿었습니다. 역시나 덴마크 디자이너다운 철학입니다. 그는 모든 창작물을 통해 매일 반복되는 일상 환경을 실용적인 동시에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의 가구를 덴마크에서만 만나라는 법은 없죠. 프린트베이커리에서는 그간 조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폴 헤닝센의 가구 디자인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조명뿐만 아니라 테이블, 의자까지 다수의 컬렉션이 들어와 있어 그의 디자인 세계를 폭넓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폴 헤닝센 가구전 'PH Funiture' 현장 ©프린트베이커리


    잠깐 가구의 발전 과정을 짧게 살펴볼까요. 가구는 특정 목적을 가진 사물이었다가, 그 사물에 디자인을 입히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발전된 기술로 디자인은 틀을 깨고 더욱 과감해질 수 있습니다. 예로, 더 이상 의자는 네 모서리에 다리를 가지지 않아도 됐죠. 나무가 아니라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디자이너만의 개성을 담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죠. 종국에는 사용성을 제외하고 예술작품으로서,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디자인도 나오게 됩니다. 오브제로서의 가구이죠. 이런 과정에서 누군가는 꾸준히 ‘가구는 사용성이 가장 중요하다. 사용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가구가 예쁜 오브제이든, 편리함을 강조하는 정숙한 아름다움이든 다 좋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하게 취향을 정립하였습니다.


    코펜하겐, 덴마크 2023 ©전혜림


    덴마크 디자인은 무엇하나 대놓고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애써 인지해야 느껴지는 디테일이 모여서 커다란 미학 세계를 만들었다는 느낌이었죠.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모든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습니다. 사람이 담긴 가구에서 느껴지는 다정함. 그건 제게 덴마크 가구의 인상이고 그런 가구로 삶을 꾸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와 나라의 인상이 되었습니다.





    WRITER 전혜림 EDITOR 조희연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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