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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한 우리의 일상을 위하여, 승지원 인터뷰

    멀리 떠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찬란한 우리의 일상들. 승지원은 그런 매일의 기억을 기록합니다. 똑같은 일상의 풍경도 빛을 받으면 유난히 아름답다고 말하면서요.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유화와 펠트로 따뜻한 기억의 질감을 만드는 승지원 작가를 만났습니다.

    peach 2, oil, merino wool on canvas, 50x50, 2023


    매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낯선 여행지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

    저는 낯선 이방인의 시선을 갖는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여행에서 마주친 모든 것은 특별해 보이니까요. 평범한 가판대 위 과일과 터덜터덜 고된 하루를 마친 누군가의 뒷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마법.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이의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면, 사실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을 뿐 여기 있는 우리의 삶도 아름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찬란한 우리의 일상들. 승지원은 그런 매일의 기억을 기록합니다. 똑같은 일상의 풍경도 빛을 받으면 유난히 아름답다고 말하면서요.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유화와 펠트로 따뜻한 기억의 질감을 만드는 승지원 작가를 만났습니다.



    작업 모습 ⓒ승지원


    Q. 안녕하세요, 먼저 첫 개인전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작가님과 이번 전시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유화 그림 위에 펠트를 얹어 작업하고 있는 승지원입니다. 이번 전시 ‘a day’는 일상 속에서 빛을 통해 만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그림 일기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저에게 유독 반짝였던 장면들을 그린 만큼 보시는 분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작품을 보면 정말 선명한 기억의 순간을 붙잡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특별히 떠올리며 작업하신 기억들이 있을까요?
    이번 작품들은 작년 유럽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며 마주친 장면을 기록했어요. 전에 런던에 있었다 보니까 한국에 돌아와서도 유럽에 대한 향수가 항상 있어요. 이번에 다시 가니 예전에는 늘 보던 익숙한 풍경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매일 먹던 좋아하는 유럽의 여름 과일들, 내리쬐는 태양, 지나가는 사람들, 거리의 냄새들까지. 그때의 좋았던 기억들을 꼭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좌)작년 한 해 좋아했던 장면 / (우) peach 4, oil, merino wool on canvas, 22x22, 2023


    Q. 작품에서 과일이나 꽃 같은 정물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죠. 사실 이런 도상들은 미술사적으로는 흔히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기도 하는데요. 작가님께는 조금 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특별히 어떤 의미를 담으려던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예전부터 잘 익은 열매나 예쁘게 핀 꽃을 보면 오래 시선이 머물더라고요. 작업하는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꽃은 싹을 틔우고, 실패하는 과일도 맺었다가, 다시 꽃을 피우고 비로소 과일을 맺습니다. 그래서 과일은 어떤 결실 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작업할 때도 비슷합니다. 엎어지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작품이란 결실을 틔우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이 모든 결실이 의미 있으려면, 꽃을 예쁘게 봐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과일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요. 요즘은 제 그림도 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생겨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Q. 작품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펠트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화 위에 질감 있는 펠트로 작업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펠트는 순전히 취미였어요. 저는 회화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쭉 유화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하나를 진득하게 못하는 성격이라 ‘펠트를 한 번 붙여 볼까?’ 하고 정말 우연히 붙이게 되었죠. 유화를 그렸던 이유도 두텁고 묵직한 질감 때문인데, 펠트의 몽글몽글한 느낌이 유화로 채우지 못한 따뜻한 느낌을 줘서 만족스러워요.



     apple and pear, oil, merino wool on canvas, 18x26, 2023


    Q. 날카로운 바늘로 부드러운 털을 찔러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바늘에 손이 정말 많이 찔려요. 피도 많이 났죠. 이제는 능숙해져서 덜 찔리긴 하지만요. 바늘에 돌기가 있어서 양모를 찌를수록 돌기에 양모가 걸리면서 빠지는 거거든요. 그럼 털이 뭉치면서 단단해져요. 처음에는 아주 큰 양모로 시작하지만 아주 작은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뾰족한 바늘로 찌르면 찌를수록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기특합니다. 저의 어떤 부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그렇잖아요. 때로는 굴려지고, 때로는 찔리기도 하면서 단단해지는 우리의 모습 같아서 애착이 가요.


    Q. 펠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틈만 나면 작업실 근처에 있는 동대문 종합시장에 구경 갔어요. 어느 날 니들 펠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장님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하셔서 시작했는데 너무 좋았던 거죠.
     

    Q. 사장님도 작가님의 그림을 보신 적 있나요?
    한 번도 없어요. 제가 뭐 하는지도 모르세요. 왜 맨날 이렇게 많이 사가냐 좋아는 하시는데, 여전히 모르세요.



    작업 도구들 ⓒ승지원


    Q. 덕분에 펠트를 시작하게 되셨는데 아직 모르시다니 되게 재미있는 일화네요. 평소에 쓰시는 작업 도구들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페인팅 할 때는 다들 쓰시는 붓이나 물감을 씁니다. 펠트를 할 땐 바늘을 쓰는데, 보통 동대문 사장님이 추천하시는 걸 써요. 비싼 것을 추천하시기도 하지만 저도 이제 손을 타다 보니까 스스로 비싼 바늘을 찾기도 하고요. 양털은 천연 염색한 양모만 쓰는데, 염색한 것을 사기에 한계가 있어서 이제는 조금씩 색깔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합을 해보는게 재밌는 것 같아요.


    Q. ‘마고(@magot.official)’ 라는 이름으로 펠트 작업을 쭉 해오셨어요. 취미로 하던 펠트 작업 때문에 ‘마고’라는 이름이 생긴 건가요? 
    맞아요. 처음 펠트를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만들어 계속 친구들에게 선물했어요. 어느 날은 친구들이 이제 이름을 짓자며 ‘마고’라는 이름을 찾아왔죠. 그때 프랑스식 이름 짓기가 유행했거든요. ‘마고’는 프랑스어로 ‘못생긴 인형’이라는 뜻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바비처럼 예쁜 인형보다는 좀 못생긴 인형들을 갖고 놀았어요. 누군가에게는 못생겨 보일 수 있지만 저에겐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만드는 것도 그렇겠죠. 그런 의미에서 마고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승지원


    Q.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365일 중에 364일을 크리스마스 하루를 위해 사는 사람이에요. 런던에 있을 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한 해의 큰 축제인데요. 차도 안 다니고 가게도 하나도 안 열어요. 가족,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특별한 시간인거죠. 저희 가족은 지금도 크리스마스에 다같이 트리를 만들고 선물도 주면서 크게 챙기거든요. 해가 갈수록 특별한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설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1년을 살고 싶어요.


    Q.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중에는 생쥐가 유독 많아요. 동화에 영향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쥐구멍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본 쥐 가족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내용인데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동화인데 영국 대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책을 발견했어요. 진짜 있는 이야기란 걸 그때 알게 됐죠. 유럽에서는 전래동화 같은 오래된 얘기래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쥐 인형이 많이 나오기도 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면 당연히 쥐라고 생각했습니다.


    Q. 펠트 인형들이 움직이는 스톱모션을 찍기도 하셨어요. 이번에도 전시를 위해 314스튜디오와 협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생쥐들을 만들면 꼭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름도 있는 김에 움직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당시에 ‘토이스토리’를 정말 자주 봤던 영향도 있습니다. 왠지 제가 자고 있을 때 움직일 것 같다는 상상을 했던 거죠. 전문적이지 않지만 스톱모션을 혼자 시도했을 때,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이번에는 314스튜디오 분들과 함께 했는데요. 작업 과정을 슬쩍 보고 울컥했습니다. “너 진짜 살아있었구나, 그렇지!” 하고요.



    candles, oil, merino wool on canvas, 90.9x72.7, 2023


    Q. ‘승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하실 때도, ‘마고’라는 이름으로 하실 때도 있어요. 승지원과 마고를 선보이는 작업 사이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까요?
     원래 펠트 작업은 ‘마고’로, 회화는 ‘승지원’으로 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경계가 모호해졌지만요. ‘마고’는 승지원의 펠트 브랜드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예술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였나요? 
    가족 구성원이 전부 예술 쪽에 계세요. 그래서 예술을 접하지 않기가 쉽지 않았죠. 어렸을 때 저녁 식사가 끝나면 다 같이 앉아서 오늘 있던 일을 그리곤 했어요. 그게 습관이 되면서 지금까지 그림 일기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술을 언제부터 했냐면 모르겠어요. 계속 제 곁에 있었거든요.


     
    진순이와의 일상 ⓒ승지원


    Q. 같이 살고 있는 털친구 진순이와 함께 작업실로 출근하신다고 들었어요. 보통 어떤 하루를 보내시나요?
    진순이는 미라클 모닝을 하는 개라 7시 반에 칼같이 일어나서 산책을 나갑니다. 그러고 밥 먹고 와서 본인은 다시 자요. 저는 그때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거죠. 아침에는 오늘 할 작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럼 그 다음 산책할 시간이 옵니다. 하루에 4번, 1시간씩 꼭 산책을 하거든요.

    진순이가 같은 길로만 다니면 좀 질려해서 매일 다른 산책길를 찾습니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새로운 길을 찾을 때마다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곳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런 곳에 꼭 보물 같은 장면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 손이 하나도 안 탄 듯한 자연 그대로의 장면들, 그 위로 햇빛만 쫙 드는 순간을 발견할 때 너무 기뻐요. 진순이가 아니었으면 절대 마주치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작업을 하는 시간 외에는 진순이와 산책을 하며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작년 한 해 좋아했던 장면 ⓒ승지원


    Q. 연말연초를 전시 준비로 바쁘게 보내셨을 것 같아요. 이제 2024년의 시작인데요. 올해를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 
     ‘마고’ 계정을 만든 지 5년째가 됐더라고요. 매년 오너먼트를 만드느라 온전히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올해는 좀 쉬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물론 아직 1월이니까 모르겠지만요. 매일매일 쓰던 작업 일기도 전시 준비로 조금 소홀했는데 다시 빠지지 않고 기록하려고 합니다. 진순이와 유럽 여행도 가고 싶어요. 런던에서 제가 걷던 거리나, 좋아하던 장면들을 진순이에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Q. 마지막 질문인데요. 전시를 보는 분들께 한 말씀 남겨주세요.
     
    작품을 통해 저의 일상에서 반짝거렸던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어요.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일상에서 반짝거렸던 순간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icnic, oil, merino wool on canvas, 53x72.7, 2023


    대화를 나누는 내내 반짝이는 순간을 나누는 이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다정한 시선과 이를 전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저에게도 옮겨 왔죠. 승지원의 시선은 유독 빛을 머금은 과일들에 오래 머뭅니다. 이를 담은 따뜻한 결실 같은 작품들이 여러분께도 행복을 선사하길 바랍니다. 승지원 개인전 ‘a day’는 1월 29일까지 PBG 더현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기간 | 2024.1.15(월) - 1.29(월)
    장소 | PBG 더현대
    시간 | 10:30AM-8PM(금토일 8:30PM)




    EDITOR 최주현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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