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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 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인터뷰

    ‘그 사람에 그 그림’ 이라는 말이 적절하게 통용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술을 가장 보편적인 언어라고 칭하며, 넉넉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한 장욱진 화백. 찬바람이 감돌기 시작하던 지난 가을, 장흥에 위치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경

    ‘내가 꾸는 꿈의 세계는 조금 다르다.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새해에도 나는 나의 동산에 살면 마냥 행복할 것이다. – 장욱진


    ‘그 사람에 그 그림’ 이라는 말이 적절하게 통용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술을 가장 보편적인 언어라고 칭하며, 넉넉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한 장욱진 화백. 찬바람이 감돌기 시작하던 지난 가을, 장흥에 위치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건물은 장욱진의 꿈 속 동산에서 편히 쉬고 있는 듯한 하얀 호랑이의 형상을 띄었고요. 작품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의 너털웃음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듯했습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김명훈 학예사로부터 전해 듣는 장욱진 화백의 진지한 고백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나는 심플하다. 장욱진


    장욱진 화백

    Q. 지난 10월 가나 아뜰리에에서 열린 오픈 스튜디오에서 오수환 선생님이 기억하는 장욱진 화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오수환 선생님은 장욱진 화백의 댁에 오가며 민속놀이를 했던 추억을 꺼내 주셨습니다. 어른들이 모여 즐기는 민속놀이를 상상했을 때, 순수함을 간직한 장욱진 화백의 특징을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동심’을 키워드로 했을 때 떠오르는 장욱진 화백의 일화가 궁금합니다.


    김명훈 학예사 (이하 김): 전시를 개최하며 장욱진 화백의 서울대학교 재직시절 제자분들을 뵐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면 작가분들께서 공통적으로 기억하시는 장욱진 화백의 모습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누구보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모습과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시는 모습입니다. 당시 대학교는 수직적인 분위기가 강했었는데 장욱진 화백께서는 격식을 차리거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제자분들을 같은 작가로서 대해주셨다고 합니다. 말씀도 거의 없으셨지만 작업을 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건내는 한 두 마디 말씀이 작가로 활동함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술자리에서는 더욱더 친근하고 막역하게 대해 주셨다고 합니다.


    장욱진 <풍경 風景>, Image 24x24cm, Frame 41.5 x 41.5, pigment printing @printbakery

    Q. 가족을 사랑했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장욱진은 화백 장욱진과 어떻게 달랐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하루는 장욱진 화백의 자녀분들이 모여서 아버지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논쟁을 벌인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욱진 화백께서는 평소 집에서도 거의 말씀이 없으셨고, 자녀분들에게 애정을 표현한다거나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일은 더군다나 극히 드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장욱진 화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가 형성하는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비단 사회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장욱진 화백은 가족들을 대할때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바라보셨던 겁니다. 장욱진 화백은 욕망이 사라진 그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웠던 것입니다.



    신갈고택 photo by 강운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Q. 현재 프린트베이커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목판화는 장욱진 화백 별세 이 후 완성된 작품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생전 목판화 작업에 임하셨던 장욱진 화백의 모습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 목판화는 미술사학자 김철순(金哲淳, 1931-2004) 선생이 한국의 선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상한 목판화집 『선(禪)시리즈 목판화집』(장욱진기념사업모임, 1995)을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당시 김철순 선생은 장욱진 화백의 명륜동 자택에 방문하여 목판화집 제작계획을 설명하며 선사상을 주제로 한 그림의 제작을 의뢰했고, 장욱진 화백은 이를 아주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합니다. 이순경 여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림 부탁을 이렇게 바로 허락하시는 경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장욱진 화백은 목판화선집 작품 제작에 많은 관심과 애착이 있었고,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선불교의 화두를 주제로 한 21점의 목판화입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좌)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36x28cm, wood print on paper, 1995 / (우) 무제, 36x28cm, wood print on paper, 1995

    Q.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 장욱진의 대표작품을 형상화한 미술관과 맑은 장흥 계곡이 흐르는 조각공원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입니다.


    Q. 어쩌면 한 명의 작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 전시를 운영하시는 만큼, 장욱진 화백에 있어서 누구보다 전문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욱진 화백의 가치관에 대해 전문적으로 탐구하고 소개하시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을까요?


    김: 장욱진 화백은 일본에서 습득한 서구 모더니즘 양식을 한국에 소개한 작가 중 한 분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할 작가이지요. 특히 유족분들께서 화백의 작품을 잘 관리하셨기 때문에 작품의 보존상태가 좋고, 작품의 이력 또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 연구의 토대가 잘 형성되어 있는 근현대 작가 중 한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도 좋지만 이러한 좋은 여건들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지형을 복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기획전 <새벽의 표정> 전시전경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Q. 사람들이 장욱진 화백을 기억하고 소장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장욱진의 예술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욱진의 단순한 선은 이러한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의 결과였고 이런 접근을 위해서는 편견 없는 사랑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작품을 보면 마치 아이가 그린 것과 같은 순수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하나 속에 있음을 의미하는 이 화두는 장욱진 화백의 단순성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단순한 선은 강한 무게감으로 화면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유와 무의 경계선에 위치한 요소들은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모든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크기와 비율은 전체적인 화면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안정되고 튼튼한 구성은 시각적 편안함을 선사하고, 형식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한 감상을 가능케 합니다.

    장욱진의 단순함은 대상의 특징에 대한 분석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오는 ‘생소함’은 이내 ‘익숙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면서 도달하는 안정감 이상의 내적 평온함은 마치 명상에 잠기듯 우리를 감각적 체험으로 이끌며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내부 전경 ⓒ효정

    Q.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공간을 가장 즐겁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해주신다면요.


    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 화백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를 모티브로 설계되어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독특한 미술관입니다. 1층과 2층의 전시장은 확장과 축소를 거듭하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합니다. 미술관 내외부 곳곳에는 장욱진 화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 아이 등의 도상들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있어 재미를 더해줍니다. 미술관 내외부를 천천히 걸으며 아름다운 작품과 자연을 함께 즐기면 스트레스는 모두 사라지고 그 빈 자리는 어느새 추억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기획전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들> 전시전경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Q. 분기별 새로운 큐레이션으로 기획전시를 진행합니다. 지난 장욱진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새벽의 표정’ 은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삶을 살고자 했던 장욱진의 인생관이 담긴 작품들이 소개되는데요. 전시를 기획할 때 마다 주제를 정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김: 미술관은 장욱진 화백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를 연구하고 그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장욱진 화백의 작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해석하고 한국 근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장욱진 화백이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장욱진 예술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들을 동시대 이슈들과 연결하여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전시는 이러한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제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수안보 시절 장욱진 photo by 강운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Q. 장욱진 화백의 작품과 그의 여정과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떻게 존재하면 좋을까요?


    김: 오늘날 우리들이 겪는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관계의 대부분이 소유나 집착, 지배 등의 욕망으로부터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욱진 화백은 자신을 비우고 대상의 진정한 가치를 바라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작품 속 단순함은 그 자아성찰의 감각적, 형상적 환원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욱진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시는 모든 분들이 나와 대상이 가지는 진정한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삷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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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꿈의 동산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직 만들어 나가고 있어도 좋고, 허물어짐이 반복되어도 좋습니다. 언젠가 장욱진 화백만큼 단단하고 담백한 땅에서 가장 나다운 동산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의 기쁨만을 누리려 합니다. 그의 분신이자 동산을 담은 판화는 프린트베이커리 온라인스토어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DITOR 송효정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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