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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최혜지 인터뷰

    작가란 평범함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길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혜지 작가를 통해 매일 마주치는 도시 풍경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죠. 도시 속 삶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은 이번에 '포장마차'에 머뭅니다. 작가에게 포차는 완벽한 삶의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최혜지, LIFE STREET 01


    ‘도시의 풍경’ 하면 괜히 삭막한 인상이 떠올라요. 회색 시멘트로 가득한 건물. 그 사이를 무뚝뚝한 얼굴로 빠르게 걷는 도시인들. 차가워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것은 최혜지 작가 덕분이었습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군중 속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며 알게 되었거든요. 우리 모두에겐 삶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 도시를 표류하며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는 최혜지 작가. 이번에 작가의 시선이 머문 곳은 거리의 ‘포장마차’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했을까요? 또 다른 삶을 포착하기 위해 훌쩍 떠난 작가는, 현재 파리에 있는 시떼 레지던시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파리의 시차를 넘어 나눈 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작업실에서의 최혜지 작가


    최주현(이하 J) : 작가님, 안녕하세요. 지금은 파리에 계신데요. 사람과 삶, 도시를 색으로 표현하시는 작가님께 요즘은 어떤 색의 시간일지 궁금합니다.

    최혜지(이하 H) : 이렇게 파리에서 인사 드리네요. 제가 파리는 처음인데요.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파리의 겨울은 정말 우울한 회색입니다. 저는 색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 회색에서 도대체 뭘 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온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아서 더 살펴보고 있지만요.

     
    파리에서 마주친 풍경 ©최혜지


    J : 뉴욕의 걸음걸이는 빨라서 작가님과 잘 맞았다고 하셨어요. 파리의 인상이나 걸음걸이는 어떤가요?

    H : 파리에 처음 딱 도착했을 때 느낌은요. 정말 올드한데 오리지널해 보였어요. 역사와 시간들 사이에 깊은 사유가 쌓여 올드하지만 오리지널한 인상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고고하구나 싶기도 했어요.

    파리의 걸음은 빠른데 느려요. 대도시의 걸음이 느릴 순 없죠.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사유의 시간을 갖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도시에서는 삶에서 계속 놓쳤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요. 그래서 몸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생각의 틈들이 계속 들어오는 상태에 있습니다.


     
    파리에서 마주친 풍경 ©최혜지


    J : 대부분의 작품에서 사람이 있는 도시 풍경을 담아 오셨어요. 서울, 뉴욕, 부산, 제주... 도시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H : 도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개인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 개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시의 사정이 전제되어야 하죠.

    천천히 걷는 사람인데 빠른 속도의 도시에 살고 있으면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 힘들겠죠. 그런 부분을 전부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순 없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이해돼야 관용이 생기고, 공동체 안에 이해가 생길 텐데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시작이 도시인 것 같아요. 작가 역시 도시로 넓혀서 이야기하면 조금 더 포용적으로 부드럽게 비유할 수 있어요.


    최혜지, LIFE JEJU


    J :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길거리 중, 특히 포장마차가 눈에 띄어요. 유독 포장마차에 끌리신 이유는요?

    H : 제가 삶을 이야기하잖아요. 포장마차는 반드시 했을 작업인 것 같아요. 넓지도 않은 공간에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모여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아이코닉한 장소가 한국의 정서 안에 있는 것이 행운이었어요. 이 작업을 언제 할 것이냐 고민했는데 아티스트북에 대한 기획이 먼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공개하게 되었어요.

    이번 전시는 포장마차라는 장소에 관객을 초대해서 정말 일상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컨셉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온갖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 미디어 세상에서 ‘배춧값이 너무 올라서 김치를 못 먹어.’, ‘이제는 김치도 못 먹겠어.’ 이런 흩날리는 일상 속 대화를 나누는거죠.


    의정부 제일시장 떡볶이집
    빨간색 목폴라를 입은 키가 작은 주인아줌마. 손님들이 먹다 남긴 그릇들을 치우고 있다.
    주인아줌마 “어이구~! 진짜 치우는 것도 한나절이여. 저녁때마다 치워주는 사람 어디 있으면 좋겠네.”
    -최혜지 아티스트북 ‘LIFE : STREET’ 중에서


    아티스트북 'LIFE : STREET'
     

    J : 작가님께 아티스트북은 전시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스트북은 빨간 색이 인상적인데요. 어떤 것을 담고 싶으셨나요?

    H : 제 작업에서 아티스트북은 그림과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예요. 작가로서 저만의 차별점으로, 앞으로도 계속 일궈 가야하는 제일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아티스트북은 보자마자 포장마차로 초대한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모든 주조색을 포장마차의 레드로 정하고, 책 앞면에 포장마차 모양의 팝업을 넣어서 입체적으로 초대장처럼 구성했죠. 지금 보면 정말 심플한데 그 심플한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엄청 고민했어요. 내부 디자인도 폰트 크기와 여백, 간격까지 하나하나 신경 썼습니다.

    책 안에는 포장마차에서 흩날리던 사람들의 대화를 적었어요. 작년 겨울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제 팀원들을 포장마차에 보냈거든요. 
     

    J : 정말요? 매주?

    H : 네, 금요일 7시부터 10시까지 매주. (웃음) 그 친구들이 계속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수집해 온 것을 다듬어 책이 나온 거예요.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시간에 아티스트북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저도 많이 고민했는데요. 저에겐 아티스트북이 관객과의 자리예요. 제 전시에서 전시장과 그림은 공간을 짓는 무대이고, 그곳에 초대 받아 온 관객들에게 4D 영상으로 완성해 틀어주는 것이 아티스트북의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둘 다 경험하고 가시길 바라죠.
     

    LIFE JEJU(왼) / LIFE STREET(오) 작품 세부


    J : 작품 속 사람들이 배우라면 아티스트북 글은 대본 같달까요. 아티스트북을 보지 않으면 배우들이 아무 말없이 무대 위에 가만히 서 있는 느낌이에요.

    H : 맞아요. 아티스트북은 그 공간을 채우는 소리예요. 그래서 그림과 만나 영화가 될 수 있는거죠. 아티스트북을 읽지 않고 그 사람들의 대사가 들리지 않으면 전시의 반쪽이 날아가는 거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최혜지, Team


    J :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대부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지난 그룹전 ‘New Work’에서 선보이신 작품 ‘Team’에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포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H : ‘LIFE’ 작업을 사람들 안에서만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계속 ‘인류세’의 관점에서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동시대 작가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안의 인간, 그리고 비인간을 포함한 삶 전체. 이 연결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줘야 결국 개인들이 잘 살 수 있어요. 이미 그 작업들은 제 안에서 넓어져 있는데 어떤 시점에,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직접 ‘최혜지가 새로운 시도로 넓혀가나?’ 느끼길 바라거든요.


    파리에서 만난 종이들 ©최혜지


    J : 요즘 새로운 재료로 종이를 연구하시는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일까요?

    H : 종이는 이전 개인전 ‘New York’가 끝난 뒤부터 계속 연구하고 있었어요. 생명체 전체로의 삶으로 확장하는 지금 시점에 종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은 그 방법론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작업을 확장해 나갈 때마다 새로운 재료들이 추가될 수 있지 않을까요.


    J : 마침 종이가 사라지지 않는 곳이라는 파리라는 도시에서 계시네요. 영감을 많이 얻으시겠어요. 

    H : 맞아요. 특히 지금 제가 있는 시떼 주변이 종이를 만드는 공방이 많은 곳이에요.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종이와의 그런 운명적인 만남들이 더 있기를 바라요. 시멘트도 그런 것이 있었거든요. 제가 파리에 와 있고, 이 파리에 깃든 역사적인 무언가와 제가 딱 닿는 지점이 있어서 종이와 새로운 스텝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업실에서 최혜지 작가


    J : 벌써 마지막 질문인데요.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이나 아티스트북의 글을 읽으며 작품 뿐 아니라 작가-관객의 관계를 많이 고려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다루는 주제와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요. 지금 작가로서 최혜지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요.

    H : 저에겐 정말 중요한 방향성인데요. 작가가 엄청난 고민의 과정을 거쳐 내놔도 관객들은 그런 부담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을 해석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시간보다, 작품을 봤을 때 자기 얘기를 꺼내고 싶어졌으면 하는 거죠.

    작가가 쉽게 그린다고 해서 담론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저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해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가 뒷받쳐줘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김범 선생님 개인전이 그런 이상적인 작업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남겼죠.


    김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초청된 관객의 존재를 어떻게 인정하고 바라보는지에 대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노란 비명 그리기>를 보면 물감의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 관객에게 인지시키며, 물감이 화가의 도구일 뿐만이 아닌 관객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그 관계로 확장된 현대미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 최혜지 작가의 인스타그램(@enosharts)에서


    H : 관객들 사이에 담론을 정말 많이 던지시는데 작품이 너무 유쾌해요. 작가의 의도된 친절함이죠. 관객이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작업. 작가는 고민을 해도, 그 흔적이 관객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최혜지, LIFE STREET 03


    조심스레 이야기했지만 최혜지 작가는 이미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삶, 사람, 그리고 LIFE. 작가가 사랑하는 세 단어는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레 밀려오죠.

    우리를 닮은 대화, 우리를 담은 장면들이 가득한 최혜지 개인전 <LIFE : STREET>는 2월 27일까지 PBG 한남에서 진행됩니다. 겨울의 끝자락, 이번 전시가 여러분께 또 다른 삶의 장면을 완성하길 바랍니다.




    기간 | 2024.2.8(목) - 2.27(화)

    장소 | PBG 한남 (용산구 독서당로 87)


    EDITOR 최주현 DESIGNER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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