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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에게 낭만을 물었습니다.

    해질녘, 북촌의 길을 따라 걷다 그레타프리든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을 만났습니다. 재즈가 흘러나오고, 스쳐봐도 대단한 룩과 여유로운 미소로 문 앞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요. ‘옷 보다 사람’ 이라는 문장과 함께 북촌을 이태리로 바꿔버린 할아버지, 박영철 이사님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앞으로의 고민이 부쩍 늘어난 요즘입니다. 나는 어떤 모습일지,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게 될지,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늙고 있다는 말보단 ‘나이가 들어간다.’ 라는 말로 시간의 가치를 더하는 작가 ‘그레타프리든’. 작품 속 노부부는 테니스를 치고, 캠핑을 다니고, 수많은 여행지에서 사진을 남기며 낭만을 즐기고 있습니다.


    해질녘, 북촌의 길을 따라 걷다 그레타프리든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을 만났습니다. 재즈가 흘러나오고, 스쳐봐도 대단한 룩과 여유로운 미소로 문 앞에 앉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요.


    이곳은 ‘노커스 (Knockers)’ 라는 테일러샵으로, 대표인 아들과 이사 아버지, 그리고 재단사까지 세 명의 전문가가 고객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옷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옷 보다 사람’ 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북촌을 이태리로 바꿔버린 할아버지, 박영철 이사님과 ‘나이듦’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커스 (Knockers) 박영철 이사님 ⓒprintbakery


    송효정 (이하 효):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영철 (이하 박): 늘 변화와 성장을 꿈꾸고 있는 70세 박영철입니다. 사람들은 박 이사라고 불러요. 올해로 나이가 일흔인데, 쉰 다섯 때 일흔이 되면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그 때 지인이 선물한 책에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의 전성기는 60세부터 90세까지라고 하더군요.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전성기는 아직 내 앞에 있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지요.



    (좌) 누군가의 이야기가 담긴 맞춤정장 / (우) 노커스(Knockers)의 슬로건 ‘옷보다 사람이다’ ⓒprintbakery

    효: 항상 이쪽 거리를 지나다가 노커스를 보면 한옥 중에서도 ‘사랑방’ 같은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특별히 옷을 맞추지 않아도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라고요.

    박: 이곳에서는 좋은 옷과 더불어 좋은 경험을 주고 싶어요. 우선 제가 옷을 이렇게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요. 주어진 여건들을 활용해서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옷을 맞추러 오신 분들에게는 그 분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곤 해요. ‘우리가 전문가니까 따라와!’ 보다는 본인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주고 제안해주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또 책을 엄청 봅니다. 책 속에서 빛나는 문장을 발견할 때면 정말이지 나누고 싶어져요. 너무 좋아서요.

    효: 최근에 발견한 문장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모두 진흙탕에서 허우적대지. 하지만 그중 몇몇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네.” – 오스카 와일드


    박: 최근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정말 좋았어요. 자칫하면 우린 마냥 허우적대면서 살게 됩니다. 그치만 그 가운데에서도 별을 바라볼 수 있죠. 저도 앞에 보이는 나무, 풀, 지나다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런 의미에서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도 좋아하는데, 책은 얼었던 감성을 깨는 것이 거든요.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도, 자연만 보아도 행복할 수 있고 충만해질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노커스에 걸린 그레타프리든 포스터와 박 이사님 ⓒprintbakery

    효: 그레타 프리든 작가의 도상을 보고 선생님을 떠올린 이유는 ‘이렇게 늙고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요. 나이가 들어서도 멋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박: 최근 잡지를 읽다가,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저에겐 그것이 옷과 책입니다. 옷은 자세나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아들의 제안으로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머리도 60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파마라는 것을 해보았죠. 처음엔 아들이 스타일링을 해줬었는데, 학습이 되니 이제는 직접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패션에 관심을 갖고 나니 지나가면서 ‘선생님처럼 늙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얼마전엔 도스토예프스키 「백치」를 읽었습니다. 고전은 어쨌든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리고 과거는 어쩔 수 없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죠. 그치만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고 금방 변하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가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에 매달려있고 과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면 인격의 밀도도 떨어지게 되죠. 그래서 고전을 읽고 「백치」를 읽는 것입니다. 한참 옛날에 쓰여진 글인데도 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너무 흥미진진해서 상권만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결국 내 후손들이 살게 되는 세상인데 나이든 사람이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printbakery

    효: ‘나이가 들어간다.’ 이것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매년 하시는 다짐이 있으실지 궁금해요.


    ‘내가 바라는게 있다면 내가 있어서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링컨


    박: 제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기쁨을 주고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해요. 링컨이 한 말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노커스에 전시된 셔츠를 들춰보면 작은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printbakery

    그래서 요즘엔 한부모 가정의 친구들과 격주에 한번씩 멘토링을 하고 있어요. 단순히 후원뿐 아니라 코칭도 같이 해주고 있어요. 더 나아가 최종 목표라고 하면 ‘독서코칭학교’ 를 설립하고 싶어요. 무료로 책도 제공해주고, 책 읽는 방법도 알려주면서 꿈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돕고 싶습니다.

    효: 그래서인지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그것을 이유로 다시 한번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을거고요.



    그레타프리든 아트포스터 <Sanfrancisco> ⓒprintbakery


    효: 그레타 프리든 작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사랑’ 은 무엇인가요?


    박: 아가페 사랑도 있고, 에로스 사랑도 있고 수많은 사랑의 형태가 있지만, 결국 사랑은 ‘상대가 나로 인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채워주는 것이죠. 소가 사자를 불러서 자기가 좋아하는 채소를 주면 사자는 아무것도 못먹잖아요. 그 반대로 마찬가지고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 그게 배려고 관심인거죠. 실제로 부인의 말에 더 귀 기울이려 하니까 부인도 달라졌다고 말해줘서 요새 참 기쁘고 행복합니다.


    효: 그럼 삶에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사람한테 애정이 없고 관심이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있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옷보다 사람이다’ 가 모든 것을 관통하는 말인 것 같아요. 모든 것의 기본은 사람을 향한 인문학 공부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레타프리든 아트포스터 <Valley> @printbakery

    효: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이들, 그리고 사랑의 시작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박: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을 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홀로 서있어야 해요. 실제로 결혼을 앞둔 한 손님이 신부가 될 사람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어요. 스스로 채워져 있기에 본인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조그마한 것에도 크게 기뻐하고 고마워한다고, 그래서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어요. 서로에게 의지는 할 수 있지만 혼자 설 수 있게 채워져 있어야 더 깊고 오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에요.



    ⓒprintbakery

    효: 테일러샵에 대해 알아보면서 참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테일러와 재단사 그리고 고객까지 그 사이에서 오간 수 많은 대화가 옷으로 탄생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박: 옷은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신의 무기가 되지요. ‘맞춤’ 이라는 것이 나만의 특별한 옷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특별해지는 것이거든요. 오직 나를 위한 옷. 경험과 의미가 담겨 더 특별함을 만들어주는 것이 테일러샵, 그 중에서도 노커스의 매력입니다.


    효: 옷을 맞추러 오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테일러샵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시작’ 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박: 맞아요. 보통 결혼 준비하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중간에 플래너도 없고, 어떻게 알고 또 오시더라고요. 신랑 신부가 와서 둘만의 경험을 만들어주는거죠. 남자에겐 결혼 과정 중 유일한 본인의 시간이기 때문에 신랑이 꼭 여기서 할거야! 라거나, 신부가 당신은 여기서 해야해! 하면서 오는 경우도 많아요. (웃음) 또 취업을 해서 첫출근을 앞두고 있거나,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거나,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와 칠순잔치 정장을 맞추기도 하고요. 그저 수 많은 스토리가 오고 가게 되지요. 신혼부부들이 오면 여러가지 팁도 공유하는데요. 그건 비밀입니다.



    ⓒprintbakery

    효: 그럼 정장 이 외에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박: 옷을 정장으로 입었다면, 신발은 캐주얼하게 신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뉴발란스랑 캔버스를 즐겨 신지요. 2018년에는 아들과 같이 뉴발란스 광고도 찍었답니다.


    효: 테일러샵에 처음 들어와 치수를 잰 후, 완성된 정장을 입고 문을 나설 이들에게 응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박: 노커스의 옷과 함께 여러분의 가치와 특별함을 잘 만들어 나가길 바라요. 고객들이 노커스의 옷을 입으면 당당해지거든요. 자신감은 물론이고 자존감이 채워져요. 피터 드러커가‘단점은 보완되는 것뿐이고, 장점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당신만을 위해 만든 우리의 특별한 옷을 수단으로 마음껏 자신의 가치와 꿈을 선보였으면 좋겠어요.


    ⓒprintbakery

    효: 앞으로도 계속 이 자리에서 저희를 맞이해주실 건가요?


    박: 당연하죠. 내가 힘이 되는데 까지는 해야지요. 그게 제 보람인데요. 힘껏 해야죠.



    ⓒprintbakery

    마지막 질문을 마치고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 인지 따로 여쭤보았습니다. 하나로 딱 짚기 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다 날씨가 맑으면 더 행복하고, 그저 모든 게 ‘해피’ 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일상이 예술처럼 느껴지는 삶이면 좋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다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샵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인생을 곱씹으며 오늘만큼은 사랑과 낭만을 누릴 수 있는 하루이길 바랍니다.



    EDITOR 송효정  PHOTO 엄종헌  DESIGN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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