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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미술관 다니는 청년’ 인터뷰

    4년째 매일 같이 전시 소식을 전하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계정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미술을 좋아해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죠. 숨 쉬는 것처럼 미술을 사랑하고 나누는 사람. ‘미술관 다니는 청년(@youthful_museum)’과 만나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들었습니다.

    신세계갤러리 분더샵, 묵상 전시 전경 ©미술관 다니는 청년


    X(전 트위터)에서 ‘미술관’을 검색하면 처음으로 뜨는 계정이 있습니다. 7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전시 계정.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프로필 소개 문구입니다.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이곳이 정말 미술관을 조금씩 더 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년째 매일 같이 전시 소식을 전하고, 작가들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바탕에는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선명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미술을 좋아해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죠. 숨 쉬는 것처럼 미술을 사랑하고 나누는 사람. ‘미술관 다니는 청년(@youthful_museum)’과 만나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들었습니다.



    마산시립문신미술관 전경 ©미술관 다니는 청년


    “작년 12월 31일에 혼자 마산에 있는 문신미술관에 갔어요. 문신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쌓으신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미술관이 산꼭대기에 있어 좋거든요. 숨이 차오를 때까지 걷다 보면 정상에 도착해요. 앞을 보면 마산항 바다가 보이고, 미술관 뒷산이 있는데 그곳도 또 바다예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미술관 뒤에 있는 선생님 묘지에 인사도 드리고 조금 쉬다 오는 것이 저만의 휴식이에요.


    한국의 자연을 좋아해서, 그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환기, 유영국의 그림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시작되잖아요. 지금의 저를 이분들이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림으로 좋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저도 조금이나마 이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계정을 계속 운영하고 있습니다.”


     

    (좌) 환기미술관 (우) 호암미술관에서 마주친 김환기 '우주' ©미술관 다니는 청년


    주현(이하 J) 미술을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언제인가요?
    미술관 다니는 청년(이하 M)
     진짜로 좋아하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어요. 한 4, 5년?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일이 있었는데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미술관을 가보라고 추천해줬거든요. 가서 작품을 보는데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여러 전시를 보러 다녔어요.


    그중 하나가 환기미술관이에요. 김환기 화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호기심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데 그때는 미술관에 '우주' 작품이 걸려 있었어요. 압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게 미술의 힘인가 생각했죠. 김환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중섭 화백 덕분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화백의 삶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런 이중섭과 김환기 화백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근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시대에 태어나신 분들이 시대적 아픔을 이겨내며 예술혼을 불태우시는 것이 제게도 자극이 되더라고요. 미술이 이런 거라면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주솔거미술관 전경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미술을 알리는 계정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M 처음에는 제가 본 전시를 기록하기 위해 개설했어요. 전시를 많이 보니까 사진첩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전시를 봤는지 기억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봤던 전시나 기간, 장소, 어떤 작가였는지 정리하고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리트윗(공유)이 되고 팔로워가 늘기 시작하더라고요. 제 일기장처럼 시작한 곳이었지만 보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만큼 책임감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같이 보면 좋을 전시를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J 전국의 미술 소식을 전하시고, 직접 다니고 계시잖아요.
    M 제가 서울에 살다 보니까 미술관을 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정을 운영하며 한 번 질타를 받은 적이 있거든요. 미술관을 표시한 지도를 캡처해서 전국에 미술관이 많다고 올렸는데, 지방 사시는 분들이 억울함을 표현하셨던 거죠. 서울에 미술관이 100개 있으면 지방에는 한두 개 있는데 뭐가 많은 거냐. 솔직히 조금 충격받았어요.


    미술관이 없어서 못 갈 수도 있구나. 그리고 미술관 간다는 것에 부담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구나. 계정을 운영하면서 이 두 가지를 제일 많이 깨달았어요. 이걸 계기로 더 쉽게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고요.


    그래도 요즘 느끼는 것은 지방에도 좋은 미술관이 많다는 거예요. 2022년에 처음 경남도립 미술관에 갔는데 미술관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런데 관람객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저도 꾸준하게 지방의 미술관들을 추천하고, 직접 보러 가고, 새로 생긴 미술관이 있으면 가보고 있어요. 



    (좌) 경기도미술관 전경 (우) 경기도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전시 중 유영국 화백의 작품들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계정을 운영하며 기억에 남은 일이 있으신가요?
    M 제 계정을 보고 전시 보러 오신 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요. 한 번은 경기도미술관에 갔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곳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아닐까, 풍경도 좋고 방지턱도 없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소개글을 올렸는데 리트윗이 꽤 많이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미술관 직원분께 DM이 온 거예요. 지역민들만 오는 곳이었는데 우연의 일치처럼 제가 글을 올린 뒤로 사람이 많아지고, 예약이 마감되기까지 했다고요. 괜히 뿌듯했어요.



    Sharing of Art 프로젝트 굿즈 ©미술관 다니는 청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Sharing of Art> 프로젝트예요. 지방에 미술관이 없어서 못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충격이 프로젝트의 시초가 됐어요.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예술을 경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간접적으로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김건주 작가와 함께 굿즈를 만들고, 수익금으로 도록을 사서 학교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죠. 누군가 한 명에게는 꿈을 키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프로젝트를 이어 나가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이 저에게도 좋은 자극이 됐거든요.



    Sharing of Art 프로젝트, 중학교에 초청되어 김건주 작가와 함께 학생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저는 최근에 ‘전시를 봐도 아무것도 못 느끼겠다’라는 분께 남기신 말도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M
     저도 대부분의 전시가 아무 생각이 안 든다, 사실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가는 전시가 더 많다고 대답했어요. 실제로 제가 전시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그림에만 몰입하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우리가 평소에 너무 다양한 것들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비우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나 부담 없이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가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꼭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전시는 제게도 20개 중에 하나 정도일까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경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미청년님만의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이 있나요?
    M
     저는 작품을 작가의 민낯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굳이 꾸미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래서 선크림 바르고 바로 안경 쓰고 편하게 가는 편이에요.
     
    J 작품과 내가 민낯으로 만나는 거네요.
    M
     맞아요. 작가가 되게 대단한 사치스러운 공간에 그림을 건다고 염두에 두지 않잖아요. 편한 옷 입고 아주 편한 상태로 가는 거죠. 가끔은 얼굴 근육도 풀고요. 전시장에 들어가면 전시 구성을 보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고 다시 보며 촬영을 해요. 좋은 전시는 그렇게 두 번은 도는 것 같아요. 
     
    J 미청년님의 취향을 넓혀준 작가가 있다면요?
    M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특별전에서 본 카미유 피사로의 '에라니의 일몰'이요. 실제로 보기 전까지 인상파 작품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 작품만큼은 보자마자 걸음이 멈춰지더라고요. 한 시간을 앞에 있던 것 같아요. 일몰 장면을 포착해서 그린 작품인데 그 빛이 너무 따스하고 환하게 느껴졌어요. 눈물이 맺힐 정도로요. 그 작품을 보려고 세 번을 더 갔어요.


    그 뒤로 내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찾아 나서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전국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 다 가겠다는 버킷리스트도 실천하고 있는데 이제 열 몇 개 정도 남았네요. 이렇게 전국의 전시를 다니며 취향이 넓어진 것 같아요.
     


    유영국 화백의 작품들 (좌) Work 1 (우) 사계절 ©printbakery


    J 사실 추상이나 한국 근현대 작가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M 시작점인 것은 맞아요. 그 당시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안 좋아할 수가 없잖아요. 예를 들면, 이중섭이라는 작가를 공부할수록 해방 이후에 나아진 형편으로 가족들과 함께했다면 얼마나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까 생각하게 되거든요.


    만약 내가 이 시기에 태어난 작가였다면 이 사람들처럼 그릴 수 있었을까.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생업에 뛰어들어서 밥 먹고 살기 바빴을 텐데, 되게 존경스러워지는 거죠.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작업을 한 거잖아요.
     


    J 바로 유영국 화백의 삶이 생각나요. 생계를 위해 일을 하시다가 다시 미술에 매진하셨잖아요.
    M 제가 정말 닮고 싶은 네 분이 유영국, 김환기, 윤형근, 장욱진 화백이에요. 유영국 화백은 정말 그 어려운 생활을 다 이겨내고, 자기가 이루어 놓은 부를 다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신 건데. 말이 쉽지, 지금으로 생각해도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 용기와 애정, 열정을 본받고 싶어요.


    그런 이유로 좋아한 분들의 그림이 대부분 추상이었던 것이지, 추상이라 좋아한 건 아니었어요. 정물화도, 초상화도 좋아해요. 결국 어떤 작품은 특정한 시기, 이 사람의 집약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작품이 정말 살아있구나, 이 사람의 정성과 땀과 시간이 들어간 것이구나 소름이 쫙 끼칠 때가 있어요. 


     

    경남도립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 도상봉 화백의 '정물'. 도상봉 화백을 통해 처음으로 정물화에도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계속 미술관에 가고, 미술을 계속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M
     작품 앞에서 감동할 때가 있다는 것이요. 펑펑 울 때도 있고요. 그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까 계속 가게 돼요.
     
    J 그런 순간에 대해 듣고 싶어요. 마음에 오래 남은, 절대 잊지 못할 풍경.
    M 21년도쯤일 거예요. 추운 겨울에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장욱진 선생님 전시에 갔어요.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어떤 작품이 있는지 모르고 그냥 갔거든요. 거기서 아주 작은 크기의 작품을 보다 펑펑 울었어요. 그 작은 작품 하나에 가족들이 들어있는 작품인데 원화로 본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선생님의 삶을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정말 애처롭더라고요. 그때 작품의 가치는 절대 크기로 매길 수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책장과 좋아하는 문장들 ©미술관 다니는 청년


    J 그림만큼 작가들의 책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종종 ‘청년의 책장’이란 태그로 작가들의 글을 발췌하시죠. 가장 와닿은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M 화가 변관식이 어느 중국 대사가 한 말을 기록한 거예요. ‘시는 형상 없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말 없는 시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이 좋아서 머리맡에 붙여 두고 늘 봅니다.



    '윤형근의 기록'과 자주 쓰는 다이어리 ©미술관 다니는 청년


    책 ‘윤형근의 기록’도 항상 곁에 두고 있어요. 윤형근 작가의 시답지 않은 농담부터 인생에 대한 고찰, 80년대 민주화를 겪으며 경험한 일을 엮었는데, 운명처럼 저에게 필요한 글이 있을 때가 있거든요. 위로나 용기를 얻을 때가 많습니다. 지인들한테도 많이 선물한 책이에요.
     


    J 마지막으로 미청년님의 앞으로의 계획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M
     미술관 소개와 더불어 앞으로는 신인 작가들을 더 소개하고 싶어요. 구독자분들과 직접적으로 만날 기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임군홍 전시를 갔다가, 좋아서 알리고 싶은 마음에 화랑 대표님께 도슨트를 해주시면 인원을 모집하겠다고 요청 드린 적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구독자분들 앞에 섰는데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들 정말 좋아해 주셨거든요.


    이런 모든 활동의 귀결은 제 프로필에 있는 문구 같아요.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앞으로도 누구나 갈 수 있는 미술관을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EDITOR 최주현 DESIGN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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