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 걸>, 2006
1960년대 뉴욕. 세대, 인종, 계급 등 다양한 사회의 간극 속에서 당돌함과 자유로운 영 패션이 유행했던 시대. 반항적인 태도의 로큰롤과 팝 아트가 주류 문화로 떠올랐습니다. 앤디 워홀은 60년대 뉴욕의 심볼이라 할 수 있는 팝 아티스트입니다. 미술의 큰 가치인 오리지널리티를 뒤흔들고, 모방과 복제의 개념을 시장에 끌어들였습니다. 뉴욕의 셀럽이자 이슈메이커였던 그의 파격적인 행보는 항상 세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 개봉한 <팩토리 걸>은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였던 에디 세드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재활원에 있는 에디 세드윅의 담담한 독백으로 앤디 워홀과 함께 했던 가장 화려한 시절을 회상합니다. 에디는 오드리 헵번이 되고 싶어 뉴욕으로 건너온, 자유로운 젊음 그 자체였습니다. 앤디 워홀은 파티에서 만난 에디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How so beautiful.”이라는 대사에서 에디의 매력을 향한 순수한 감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디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 초대받고 그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후 앤디 워홀의 뮤즈가 되어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로 거듭나게 됩니다.
둘은 연인이 아닌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영혼의 동반자로서 함께 했습니다. 많은 것을 나누고, 모든 곳을 함께 다녔습니다. 앤디 워홀은 에디를 어머니에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둘의 관계는 록스타 빌리가 나타나며 무너집니다. 에디는 빌리의 자유로운 에너지에 매료되어 마음을 빼앗기고, 점점 본인이 팩토리의 일원이 아니라 피사체일 뿐이라는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 번 틀어져 버린 관계는 파경으로 치닫고, 앤디 워홀을 잃은 에디의 삶은 점점 비극을 향해갑니다.
영화 속 앤디 워홀의 감정은 굉장히 모호합니다. 춤추는 에디를 바라보는 시선, 연기하는 에디를 담는 긴장된 호흡 등은 그의 미묘한 감정을 보여줍니다. 앤디 워홀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그를 “생존을 위해 자기방어를 사용했던 사람.”으로 정의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 창백한 피부, 정갈한 은발, 깔끔한 차림새는 마치 플라스틱 인형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에 비해 많은 이들이 평가하는 에디 세드윅은 생명력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영감을 주고받는 예술의 동반자로서 깊은 영혼의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영화 속에도 통화씬이 자주 등장하는데, 첫 경험의 순간, 내밀한 가정사,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 내밀한 내용을 나누는 모습에서 교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이성으로서 사랑이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예술가의 ‘뮤즈’는 사랑의 대상과 영감을 주는 피사체,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미묘한 차이가 두 사람을 어긋나게 만든건 아닐까요?
미술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팩토리’는 당시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미술 시장에 일침을 가하는 상징적인 곳으로 모든 아티스트가 선망하는 공간으로 발전합니다. 그곳의 뮤즈였던 에디 세드윅은 안타깝게도 공장에서 만든 인형 같은 존재로서 팩토리 걸이라 불리게 됩니다.
영화는 6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The Reflections의 “Just Like Romeo and Juliet”과 Martha & The Vandellas의 “Nowhere To Run”등 당시를 대변하는 록음악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실제 앤디 워홀의 영화와 배우들의 연기가 몽타주 기법으로 배치되어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감독이 가장 공들였던 것은 팩토리의 재현입니다. 뉴욕 이스트 47번가에 존재했던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영화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은박지와 은색페인트로 칠해진 벽, 은색 풍선, 중앙의 붉은 발렌타인 쇼파 등은 실제 앤디 워홀이 제작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1963년부터 1966년까지의 작품 중 19점을 재단의 협조를 받아 설치하여 사실감을 높였습니다.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의 이야기를 통해 낭만과 파격이 뒤섞인 60년대 뉴욕의 감성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60년대 누구보다 날 매료시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때 그 느낌은 아마 사랑 비슷한 종류였을 것이다.”
- 앤디 워홀
EDITOR 진혜민 DESIGNER 제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