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미술계를 슬픔에 잠기게 한 소식이 들렸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살아있는 기둥이었던 김창열 화백의 별세 소식입니다. 향년 92세, 영롱한 물방울의 세계를 남긴 위대한 화가를 영원한 무상의 세계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김창열은 50년간 수행하듯 물방울을 그리며 일관되게 예술 세계를 펼쳐왔습니다. 물방울에 관해 물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냥 내가 못나서 그리는 것일 뿐.”, “나는 물방울 한 가지밖에 없다.”라는 대답으로 물방울에 대한 꾸준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갤러리현대, 2020 / 촬영: printbakery
물방울을 그리게 된 것은 오로지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1970년 파리, 마구간을 작업실로 사용하던 시절의 일화입니다. 밤새 그린 유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떼어낼 요량으로 캔버스 위에 물을 뿌려 놓았는데, 그 위로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비치게 됩니다. 방울진 모양이 아침 햇살을 머금고 빛나는 것을 보는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이후 1972년, ‘살롱 드 메’ 전시에 물방울이 전면으로 나타난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화단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좌: 김창열, 물방울 / 우: 김창열, 회귀2 by printbakery

좌: 김창열, 회귀1 / 우: 김창열, 회귀3 by printbakery
김창열은 1929년 대동강 상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며 미술에 관심을 갖지만 어른들의 반대로 적극적으로 꿈을 펼치진 못했습니다. 광복 후 월남하여 피난 수용소에서 1년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힘든 과정을 거쳐 만나게 된 부친이 그제서야 미술의 길을 응원하게 됩니다.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우고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진학하였습니다. 곧이어 6.25전쟁이 발발하며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투명한 물방울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쌓인 상흔의 자욱을 정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갤러리현대, 2020 / 촬영: printbakery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 운동을 이끌던 화백은 1965년 록펠러재단의 후원을 받아 뉴욕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뉴욕은 앤디 워홀을 주축으로 팝아트가 주목받고 있어 김창열의 작업은 크게 눈에 띄지 못했습니다. 이후 장르의 다양성이 공존했던 파리로 건너가 물방울을 발견하고 한국 미술의 거장으로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가 표현한 투명한 물방울의 세계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며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었습니다. 1996년에는 프랑스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았습니다. 작고 이후에는 뉴욕타임스(NYT)에서 부고 기사를 실었습니다. “동양 철학과 전쟁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은 영롱한 물방울 그림들을 창작하는 데 반세기를 헌신했다.”라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스타 예술가(art star)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김창열 개인전 'The path', 갤러리현대, 2020 / 촬영: printbakery
‘파리의 사랑방’으로 불렸다는 그의 작업실은 수없이 많은 한국과 유럽, 일본의 저명인사들이 방문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백남준, 이우환 화백이 자주 찾아 담소를 나누었고, 이경성 초대 국립현대미술관장, 배순훈 관장님 내외 등 많은 분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박서보 화백과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 또한 유명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작품만이 아니라 사람 김창열을 찾았습니다. 생전 화백의 어시스트를 했던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운영위원 유진상 교수의 말에 따르면 상대를 편안하게 받아주는 자상함과 포용력이 따뜻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전경 ⓒ김창열미술관
따뜻한 눈빛으로 사람과 세상의 상처를 살피던 그는 이제 작품으로 영원의 이야기를 펼칠 것입니다.
“내 욕심은 뜻 없이 투명한 물방울을 갖고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너절하지 않고 있으나 마나 하지 않은 화가로 후대에 남고 싶다.” – 2013. 갤러리현대 개인전 간담회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전경 ⓒ김창열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전경 ⓒ김창열미술관
EDITOR 진혜민 DESIGNER 이진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