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지는 것은 사유뿐이다.”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지나간 삶은 돌아오지 않고 남는 것은 사유뿐이라고 했습니다. 사유는 노력의 고결한 결실입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니까요. 르 코르뷔지에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 속에 행복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야말로 존재의 증명이며 삶의 이유인 것입니다. 매일의 삶으로부터 얻어지는 바를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나의 존재를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Monument to the French architect Le Corbusier in front of Rosstat. Moscow, August 2018 ⓒPhotoJuli86
르 코르뷔지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꿈꾸며 공간의 혁명을 일으킨 선두에 있었습니다. 현대 건축의 기초를 다지면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뽑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도시계획은 베를린, 모스크바 등 유럽권은 물론 아시아, 중남미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인도에 세워진 코르뷔지에의 계획도시 찬디가르는 인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Electa box set, 1993 volume on the life and works of the famous architect Le Corbusier 1887-1965, with Il Modulor scale of proportions based on human measurements. ⓒStefano Chiacchiarini
1965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77세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작업을 펼쳤습니다. 사십 권의 저서, 수백 편의 논문, 삼만 이천 점의 도면, 사백 점의 회화, 칠천 점의 데생, 이 외에 조각, 크로키, 판화, 가구, 카펫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광범위한 작품들이 남아있습니다. 화가로도 조각가로도 시인으로도 부를 수 있겠지만 고별사를 낭독한 앙드레 말로는 ‘위대한 건축가’로 그를 지칭합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삶은 사람으로부터 오고, 사람은 삶으로부터 온다.’는 그의 말은 결국 삶을 영위하는 주체로서 개인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인생을 이해하는 정신’이기 때문에 삶을 흔적이 담긴 작업물을 사랑했습니다. 그가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사물은 모로칸 러그입니다. ‘삶은 스스로 그물을 짜 나간다.’는 표현을 한 것처럼 베를 짜는 행위를 삶을 영위하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로칸 러그는 모로코 베르베르족의 오랜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직물을 짜내는 부족 여성들은 매일 변화하는 미묘한 기운을 러그에 담아냅니다. 그날의 염원이나 숭배의 마음, 혹은 가족의 탄생이나 죽음 등 생사의 이야기가 독특한 패턴으로 담겨있습니다. 어느 날은 길에서 마주친 도마뱀을 떠올리며, 다른 날은 유난히 뜨거운 햇빛의 열기를 느끼며 천천히 직조를 해나갑니다. 직조하는 매일의 기운에 따라 자유롭게 그려내는 짜임은 삶의 사유가 담긴 유일의 작품이 됩니다.
Street with souvenirs in Chefchaouen, Morocco, North Africa
Street with souvenirs in Chefchaouen, Morocco, North Africa
르 코르뷔지에는 아름다움을 탐닉한 예술가입니다. 무엇이든 알아야 하고, 보아야 하며 알기 힘든 것들도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가장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입니다. 사람의 손길과 기운,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모로칸 러그는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사물이었을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직조하는 여인들을 상상한다면, 작품마다 가진 유일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마음으로 나의 삶을 천천히 사유하며,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을 예찬합니다.
참고문헌
「르 코르뷔지에의 사유 Mise au point」 (르 코르뷔지에, 열화당, 2013)
EDITOR 진혜민 DESIGNER 이진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