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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지현의 바다'에 남겨두고 온 이야기

2022.08.01

우리가 '우지현의 바다'에 남겨두고 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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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현은 푸른 바다를 담은 작업을 펼칩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축약하기엔, 너른 수평선이 품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다 들려줄 수는 없었죠.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애정하는 사람들이, 우지현의 그림 속 바다에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퍽 다정한 장면이 펼쳐지리라 기대하며, 이들을 우지현의 바다로 소환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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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현,바다가 보이는 방, Oil on Canvas, 60.6 x 80.3 cm, 2022


우지현은 푸른 바다를 담은 작업을 펼칩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축약하기엔, 너른 수평선이 품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다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 이번 전시와 그의 작품을 소개해야 하는 담당 에디터로서, 어떻게 하면 그의 세계관을 잘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해답은 그가 했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모래나 자갈보다 높은 비율로 바다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조금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애정하는 사람들이, 우지현의 그림 속 바다에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하고요. 퍽 다정한 장면이 펼쳐지리라 기대하며, 이들을 우지현의 바다로 소환해보았습니다. 시퍼렇게 펼쳐진 수평선을 앞에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은 롤링 페이퍼를 쓰듯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바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의 바다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요?



(좌) '세 친구'가 수록된 『유원』 표지 ⓒ우지현, (우)우지현, 세 친구, Oil on Canvas, 97 x 130.3 cm, 2020


정민교 / 편집자 ,『유원』 편집

우지현과의 인연 SNS를 통해 우지현 작가님이 올리는 작업물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출판사에 몸담은 편집자로서 어떤 도서의 편집을 맡게 되면, 책의 얼굴이 될 표지화를 떠올려보곤 해요. 『유원』이란 소설을 편집하던 당시 우연하게도 우지현 작가님의 '세 친구'를 만났죠.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유원』에는 두 명의 주인공 ‘유원'과 ‘수현'이 등장해요. 소설을 읽으며 인물들의 뒷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는데, 작품 속 인물들이 제가 떠올린 뒷모습과 매우 흡사 해보였어요. 추후 우지현 작가님께 작품을 표지에 수록할 수 있을지 여쭤보았고, 수락하셨을 때 무척이나 기뻤답니다.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세 친구'의 인물들은 무언가 결단을 내릴 듯 굳건해 보이다가도 한편으론 쓸쓸해 보이기도 했어요. 전반적으로 청량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세 친구'를 표지화로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맨 왼쪽 인물을 잘라내어 뒤표지로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소설 속 주인공 ‘유원'의 죽은 언니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세 인물의 관계를 상상해보다 두 인물에 비해 옷차림이 성숙해 보이기도 했고, 어쩐지 제겐 유원의 언니처럼 느껴졌어요. 기존에 있던 그림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배치했을 뿐인데, 독자분들이 그 의미를 추측하여 종종 SNS에 올려주시기도 하셔서 신기했답니다.

나에게 ‘바다'란 ‘연결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래전 동남아의 한 휴양지에서 오랫동안 바닷속에 몸을 담갔던 적이 있어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 서 있으니 ‘내가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구나, 이 지구와 한 몸이구나', 하는 강렬한 연결감을 느꼈습니다. 시원한 색채와 장소성이 느껴지는 그림을 보면 그때의 바람과 물살 소리가 떠올라요. 다른 감상자들 또한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던 본인만의 바다를 꺼내 볼 것 같아요. 우지현 작가님의 그림은 세련된 고전처럼, 많은 이들의 눈과 마음에 오래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민지 / 배우, '유원' 유원 역

우지현과의 인연 우지현 작가님과는 『유원』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함께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팀과 ‘재난'에 관련된 연극을 올리고자 고민하면서 『유원』을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 표지화에 마음을 빼앗겼던 지라 공연 소식도 전달 드릴 겸, 작가님 그림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SNS를 찾아봤어요. 계정을 찾고,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작가님의 작품은 이를 접하는 시간과 마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누가, 어떤 시간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작품 앞에 서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여서 더욱 멋지다고 생각했죠. '세 친구'는 『유원』이란 작품과의 합이 너무나도 잘 맞아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표지를 보고 있자면 이야기 속 유원이와 수현이가 말없이 바다를 보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참고로 관객분들께서도 공연 포스터를 많이들 가져가셨어요. 프로덕션 내에서도 이렇게 관객들이 포스터를 챙겨가는 공연은 처음이라며, 이례적이라고들 말씀하셨죠. 저도 지내는 곳에 붙여뒀어요. 아무래도 '세 친구'에 깃든 사연이 많다 보니, 다른 작품들을 언급하지 못했는데 작가님들의 작품 모두 위 같은 연유 때문에 좋아한답니다.

나에게 ‘바다'란 저는 강화도 섬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바다는 제게 일상이나 다름없어요. 처음 작품 속 바다를 봤을 때는 색감이 파랑파랑하다 보니 자연스레 동해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제가 사는 강화도에서도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더라고요. 하루는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에 해안 도로를 지나게 되었어요. 우연히 마주친 바다색이 너무나도 파랑파랑해서, ‘우와 서해도 제법 푸르구나.’ 새삼 깨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 바다란, 답답할 때 곰곰이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공간이에요.



김계림 / 배우, '유원' 수현 역

우지현과의 인연 2021년 연극 '유원'에서 ‘수현'역을 맡아 연기를 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세 친구'를 계속해서 접하다 보니,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더라고요. 그 시간이 꽤 재미있었어요. 극 속 인물들은 구현되기 전까지는 배우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기 마련인데, 그림을 감상하며 제 안의 수현이를 상상 밖으로 불러내 실제로 구현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무대나 조명 디자인할 때도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연출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좋은 작품 덕분에 다채로운 공연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소소한 일화인데, 그림 속 인물이 제 뒷모습과도 많이 닮아서 연극 포스터를 공개했을 때 지인들이 실제 사진인 줄 알고 ‘노란 티를 입은 소녀가 너 맞지?'하고 많이들 물어보셨답니다.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작가님 작품 속 푸른 색감을 좋아해요. 하늘과 바다, 수영장과 밤 풍경 모두 소리 없이 찬란해 보여요. 특유의 푸른색을 볼 때마다 청량한 감각을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어요. 『유원』표지를 봤을 때도요. 높은 담벼락 뒤로 펼쳐진 바다가 너무나도 깊은 파란색이라, 그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이 압도당한 것처럼 보였어요. 담벼락이 높아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뒷모습에서 일말의 두려움이 느껴졌달까요. 물론 제가 그들의 표정을 본 적은 없지만요. 작가님이 묘사하는 빛과 바람도 좋아요. 작품 속 장소의 온도와 머리카락을 쓸고 가는 바람의 세기, 스치는 옷의 감각 모두 느껴지거든요. 저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고,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낱낱이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을 볼 때마다 몰입하게 돼요. 프레임 너머 인물의 사연이 궁금해지고, 감정과 표정을 상상해보게 되죠. 나름의 해석을 하기 위해 제 경험을 빌려오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알 수 없이 그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괜스레 아련해지고, 그러다 못해 기억이 그림 속 장면과 교묘히 합쳐져 미화될 때도 있어요. 아무래도 작가님 작품은 새벽 2시 넘어서 보면 안 되겠네요.

나에게 ‘바다'란 20대 중반에 공연팀 동료들과 함께 양양에서 한 달살이를 한 적이 있어요. 바닷가 근처에 있던 서핑 샵의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서 매일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서핑하고, 연기를 했죠. 마음이 흔들릴 땐 바다를 보기도 했어요.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의 바다는 생기와 즐거움이 넘치는 공간이지만,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혼자 해변에 앉아있으면 어둠을 품은 바다가 무섭게 느껴지곤 했죠. 천둥 같은 파도 소리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다가도, 그에 의지해 감춰뒀던 감정들을 쏟아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바다를 마주 보고 실컷 울고, 웃었어요. 생각해보면 바다를 곁에 두고 지냈던 그 시기가,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예술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경험하기 전까지 제게 바다란 그저 물놀이와 바비큐와 술이 있는, 가끔 일상의 환기가 필요할 때 찾는 장소였어요. 지금은 일하다 예술적인 감성이 필요할 때마다 그날의 바다를 떠올리곤 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행복했던 순간들이 퐁퐁 샘솟곤 해요. 그래서 제게 바다란 ‘일기장’이기도 해요.우지현 작가님의 그림 중 바닷가에 혼자 앉아있는 보랏빛 단발머리의 여자를 보고 있으면, 꼭 그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곤 해요. 물론 당시의 저는 머리도 길고 옷차림도 완전 달랐고 눈물범벅이 되어 한밤중 검은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그 여자가 바라보고 있는 군청색 바다가 마치 그날 제 앞에 놓였던 장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묘하게 마음이 술렁거렸어요. 언젠가 작가님의 작품을 제 방에 놓아두고 싶습니다. 일기장을 펼쳐보고 싶을 때, 작가님의 바다를 보고 싶어요. 연기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좌) 이번 전시에서 관람할 수 있는 종이 원화 작품들, (우)표지화 작업 책 모음 ⓒ우지현


오혜영 / 그래도봄 출판사 대표, 『상처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편집

우지현과의 인연 작가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해보고자,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2010~2015년 즈음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 에세이'가 한창 유행처럼 출간되던 때였어요. 당시 편집자이던 저도 그 기류에 편승하여 그림 에세이를 진행했는데, 서점에서 우지현 작가님의 『나를 위로하는 그림』을 보게 되었죠. 그 책을 보자마자 우지현 작가님을 떠올리며 기획안을 썼어요. 야심 차게 기획안을 올렸지만, 내부 사정에 의해 엎어지고 말았어요. 회사를 옮겨서 또 한 번의 시도를 했으나 … (사연이 길어 중략하겠습니다) 어쨌든 작가님은 제 ‘최애'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따로 독립하여 그래도봄이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첫 책인 박미라 작가님의 『상처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표지를 발주하며 디자이너에게 국내 작가의 그림으로 진행하고 싶다 부탁드렸습니다. 디자이너와 합심하여 그림을 찾다가, 수많은 그림 중 공통된 의견 중 하나가 우지현 작가님의 그림이었죠.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이번 개인전에는 전시되진 않았지만, 우지현 작가님의 '우리 사이의 거대한 산'을 보며 그림에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사람,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과 파란 바지와 셔츠를 입은 여성을 보며 ‘양가감정’이란 단어를 떠올렸어요. 상처 입은 사람들이 느낄만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두 사람의 뒷모습만으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앞에 놓여있는 산은 뭔가를 가로막고 있다기보단 위로의 정점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그들은 저 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더없이 궁금해져 계속 상상해보았습니다.

나에게 ‘바다'란 제게 바다란 ‘쉼'입니다.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인데, 처얼썩처얼썩 반복적인 파도 소리를 감상하다 보면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집니다. 코로나 전에 스페인의 휴양 도시인 마요르카에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워낙 해변이 유명한 곳이다 보니,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어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바닷가 풍경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제가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거든요. 다행히 저에게도 읽을거리가 있었고, 어디를 가든 책을 챙기는 제 습관을 칭찬하며 고요함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가끔 평온한 잠처럼 느껴졌던 마요르카 해변에서의 ‘쉼'이 그리워질 때면, 해 질 녘이나 새벽에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하곤 합니다. .



원보름 / 편집자, 『19호실로 가다』 편집

우지현과의 인연 도리스 레싱의 소설집 『19호실로 가다』는 편집자로서 너무나 잘 만들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원고를 거듭하여 읽을수록 소설에 푹 빠졌고, 이 분위기를 한껏 담은 그림을 표지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우지현 작가님의 그림은 SNS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계정 관리를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지 피드에 작품 사진은 한 장뿐이었죠. 그 작품이 바로 표지에 쓰인 'One night' 이었습니다. 홀로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여성의 뒷모습이 왠지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의 뒷모습처럼 느껴져 보자마자 그림을 저장해뒀죠. 디자이너가 가안 이미지를 전달했을 때, 그 그림 속에서 수전을 둘러싼 19호실의 냉기가 실제로 느껴지는 듯했어요. 무척이나 밝고 따뜻한 색의 그림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인물이 외로워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때 그 그림을 반드시 사용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우지현 작가님의 그림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One night' 속 여성은 고독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푹신한 침대 위에 눕지 않고, 굳이 앉은 채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뒷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가끔 마음이 너무 지치면 내 몸조차 제대로 누이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19호실로 가다』의 수전도 마찬가지예요. 그는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이 완벽한 삶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고독하고, 수전을 채우는 것은 19호실이란 공간이 전부죠.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존재하는 그 순간에만 수전은 자유로워져요. 인간이라면 한 번쯤, 고독에 에워 쌓이게 되곤 하죠. 그 그림 속에서 이를 발견하게 된 후로, 누군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한 작품을 그리는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바다'란 저는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래서 제게 바다란 ‘유년'이나 다름없어요. 순수하게 행복했던 시절과 그때의 감정들이 바다에 모두 담겨있거든요.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질 때면 바다로 떠납니다. 특히 바다의 색이 그 어느 계절보다 깊어 보이는 가을의 동해를 무척이나 좋아해요. 우지현 작가님의 그림 속 바다를 보면 무척 차가워 보이는데, 동시에 강렬함도 느껴져요. 가을의 동해에 예고 없이 손을 담갔을 때 느껴지는 뼈속까지 시린 감각이요. 그래서 수평으로 끝까지 이어진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쨍그랑 깨지고 번잡한 머릿속 생각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만 같아요. 묘하게 차분해지곤 하죠. 그 시간이 제겐 무척 소중하고, 저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끔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곤 해요.



우지현, 기다림, Oil on Canvas, 112.1 x 145.5 cm, 2019


곽아람 / 기자, 『매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저자

우지현과의 인연 지난해 낸 책 『매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를 통해 작가님과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그림을 제 책 본문 이미지로 쓰게 되면서, 작품들을 처음 보았는데요. 당시 출판사에서 전통적인 명화와 작가님의 작품을 두고 고민했는데 저는 우지현님의 그림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현대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져 동시대 여성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작가님께 연락을 드리게 되었죠. 책을 받아들었을 때, 작가님의 그림 덕에 제 책이 살아 움직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좋은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건 우지현 작가님께서 대학교 때 제 첫 책『그림이 그녀에게』를 읽고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인연이란 참 미묘하고도 신비롭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 대학생이 졸업한 뒤 그림을 주제로 한 글을 쓰는 멋진 에세이스트가 되고, 훌륭한 화가가 되어 협업까지 하게 되었으니까요.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을 꼽을 수가 없어요. 우지현 작가님의 여러 작품이 제 책에 실렸고, 모두 제 소중한 자식처럼 여겨져요.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지현 작가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생동감'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림 속 인물들은 이야기 속 인물들처럼 환상적이면서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에 존재하고 있죠. 작가님이 그리는 뒷모습은 어떤 정면상보다도 많은 말을 건네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에 특유의 쨍한 푸른색이 더해져 청량감과 상쾌함, 슬픔을 넘나드는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나에게 ‘바다'란 제게 바다란 휴식의 공간이에요. 아직 전시회에 가보지 못해서 작가님의 바다를 실제로 만나진 못했어요. 조만간 전시장을 찾아 ‘우지현의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의 격랑을 잠재우고 쉼을 느끼고 싶습니다.



(좌) 우지현, 발코니의 햇살, Acrylic on Paper, 30 x 38.1 cm, 2019 (우) 우지현의 화집,『더 포스터 북 by 우지현』 ⓒ우지현


김은지 / 편집자,『더 포스터 북 by 우지현』편집

우지현과의 인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쉼과 휴식을 양껏 누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편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 정도는 누구나 있을 거예요. ‘내 공간에 여는 작은 전시회'라는 기획 의도가 담긴 ‘『더 포스터 북』 시리즈를 기획 편집하며 우지현 작가님과 연이 닿게 되었죠. 당시 담당 편집자로서 나름의 기준이 있었는데, 공간에 작품을 들였을 때 독자의 마음을 매만져 줄 수 있는 그림을 지표로 삼았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고, 흔쾌히 수락해주신 덕에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완성에 가까워질 때쯤 다른 곳으로 이직하게 되어 마무리를 짓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께선 신간이 나오거나 전시가 진행될 때마다 소식을 전해주시더라고요. 작은 인연임에도 소중히 여겨주시는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발견한 것들 저는 우지현 작가님이 그림에 담아내는 ‘빛'을 좋아해요. 늘 곁에 있어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빛'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지현 작가님은 이를 잘 포착해내는 분이에요. 특히 『더 포스터 북 by 우지현』에 수록된 ‘오후 네시의 빛'을 좋아해서 옅은 색의 우드 액자에 담아 현관 통로 벽면에 걸어두었습니다.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느꼈던 감각은 어떤 질감의 형태로 남아 마음속 깊은 못에 띄워져 있다가, 특정 순간을 마주했을 때 불현듯 떠오르곤 합니다. ‘오후 네시의 빛'을 볼 때마다 어떤 장면들이 별안간 생각나곤 해요. 언젠가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던 순간, 소중한 사람과 바닷가에 앉아있던 모습, 강가를 걸으며 웃고 있던 엄마의 눈빛 등 생생하게 만져지는 수많은 장면이 있어요. 각각의 다른 기억을 떠올리며 작품을 마주하는 동안 늘 새로운 빛을 발견하게 되어요. 그에 버금갈 정도로 '세 친구'도 마음이 가요. 이직하고 얼마 후. ‘유원'이란 도서에 참여하게 되면서 표지를 정해야 했어요. 모두가 고심할 때쯤 담당 편집자에게 우지현 작가님의 작품을 추천했죠. 결과적으로 책도 그림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언급한 두 작품 모두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림을 보시는 분들 모두 작품이 전해주는 풍부한 감각을 누리셨으면 해요.

나에게 ‘바다'란 '약속'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올해 초에 속초를 다녀왔는데요. 모두가 힘들게 버텨온 2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다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던 기억이 나요.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란 언약과 더불어 바다와 저만 아는 비밀 이야기들도 일종의 약속이기도 해요. 주로 제가 일방적으로 털어놓을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다 들어주고 답도 내어줍니다. 우지현 작가님의 작품 속 바다와 수평선을 보면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면서도, 늘 같은 안정감을 선사하니까요. 그래서 작가님의 그림이 걸려있는 제 방은 ‘약속'의 공간이 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관람하시는 분들도 단어나 표현이 다를 뿐, 비슷한 마음을 느낄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 앞에 놓인 시간 속에서 지금보다 어려운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서 ‘약속'을 품고 있는 바다를 감상하며 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EDITOR 오은재 DESIGNER 이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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